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1979년 10월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金炯旭) 전 중앙정보부장의 암살과정에 동원됐다고 보도한 여배우 최지희(崔智姬·65·본명 김경자)씨. 최씨가 25일 기사를 쓴 시사저널 정모 기자와 김경재(金景梓) 전 의원 등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관련 기사의 진위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6일 본지가 최지희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는 당시 파리에 없었다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인 최씨는 "김형욱씨가 파리에서 실종됐다는 1979년 10월 7일 나는 일본 도쿄에 있었다"며 자신이 김형욱씨를 파리로 유인하는 데 동원됐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영화배우로 한창 활동하다 1967년 결혼한 뒤 73년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최씨는 2000년까지 일본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최씨는 이날 자신의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를 입증하겠다며 30여년간 써온 일기 형식의 메모가 적힌 수첩을 기자에게 공개했다. 이 수첩은 가죽 겉표지에 '1979'라는 연도표시가 새겨져 있었고, 최씨는 사건 전후 10년치의 메모를 공개하면서 메모가 조작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김형욱씨가 파리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1979년 10월 1일자 수첩에는 최씨가 도쿄에서 '파고다'란 클럽을 인수하기 위해 계약을 맺었다고 돼 있다.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메모와 함께 인수대금으로 2000만엔을 지불했다는 내용도 덧붙여 있다. 이후 10월5일까지는 주로 클럽 운영 등 사업 관련 내용들이 적혀 있다. 최씨는 "당시는 1978년 남편과 이혼한 뒤 일본에서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려 노력하던 때"라고 말했다.
김형욱씨가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10월7일. 최씨는 전날 한국에서 도쿄로 찾아온 'R'이란 인물과 도쿄 인근 하코네 온천으로 여행을 간 것으로 적었다. '경치는 좋았으나 비가 너무와 답답하기 짝이 없다'고도 적혀 있었다. 최씨는 당일 날씨 기록을 조회해보라고도 했다. 최씨는 'R'씨의 존재에 대해 "평소 친분이 있는 한국 남자 친구"라고만 했다.
◆김형욱씨와의 친분은?
시사저널은 4월11일자 최씨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김형욱씨를 파리로 유인한 사람은 자신이 김씨에게 소개한 또 다른 여배우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최씨는 이날 "내가 김씨 실종과 무관함을 강조하다 나온 과장된 말이었다"며 또 다른 여배우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최씨는 "김형욱씨는 1968년과 1970년대에 한 번씩 딱 2번 정도 만난 일이 있다"며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한 연예인에게 지나가는 말로 '김 전 부장을 소개해줄까'라고 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최씨는 김씨에게 이 여배우를 실제로 소개해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씨는 특히 미국에 망명한 김형욱씨가 1977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로비스트 박동선 사건의 장본인인 박동선씨가 첫사랑이라고 말했다. 1967년 결혼과 함께 박동선씨와의 연인관계가 끝났기 때문에 이후 김형욱씨와 친분을 쌓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최씨는 이 부분도 부인했다.
◆최씨가 정말 아닐까?
최씨가 고소한 김경재(金景梓) 전 의원은 이날 "나는 김형욱씨에게 연예편지를 보낸 사람이 최지희씨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김형욱씨가 보여준 연예편지의 주인공이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며, 내가 짐작하고 있던 사람도 최씨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시사저널 기사에 등장하는 암살조장 이모씨를 만났다며, "분명 이씨는 당시 파리의 납치 승용차 안에서 최지희씨를 봤다고 주장했다"며 "그의 말을 의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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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실종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사이가 나빠져 1973년 미국에 건너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김씨는 역대 중정부장 중 최장기간(6년3개월)을 재직해 박 정권의 '어두운 구석'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실종된 후 프랑스 당국이 수사에 나섰지만 밝혀내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모름" "무관"으로 일관했다.
최지희(65)씨 약력
▲1956년 '아름다운 악녀' 데뷔
▲1963년 제1회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 수상(김약국의 딸들)
▲1964년 제3회 대종상 여우조연상 수상(돌아오지 않는 해병)
▲1970년 '맨주먹으로 왔다' 1971년 '날벼락' 등 다수 작품 출연
▲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