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 두 알을 손에 넣고 '오드득 오드득' 소리를 내며 문지르던 할아버지. 하늘색 중국 구슬 두 알을 손바닥에서 굴리시던 할머니. 신경통에 특효라던 자석 팔찌와 벨트, 효도 선물로 인기였던 옥, 자수정, 맥반석 장신구까지. 건강과 관련된 장신구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지금 불고 있는 실리콘 건강 팔찌 열풍은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한의사 박기복(단원경희한의원 원장)씨는 요즘 건강 팔찌의 열풍을 실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중년 부인들이나 사용하던 건강 팔찌를 요즘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절반 정도의 환자가 착용하고 오기 때문. 효과가 있다는 사람부터 잘 모르겠다는 사람, 오히려 건강이 나빠졌다는 사람까지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중년부인의 상징은 옛말… 직장인 중심으로 확산

건강 팔찌 열풍은 스포츠 스타들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 마라톤 등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 스타들이 운동 중 입은 부상에 효과가 있다고 입소문을 내면서 대중의 관심이 쏠렸던 것.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건 2002년 월드컵 때 일본 화이텐사의 티타늄 팔찌를 김남일 선수가 착용하면서부터다. 이후 홍명보 선수가 이 팔찌의 모델로 나서면서 보다 널리 알려졌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랜디 존슨, 박찬호 등 스포츠 선수들도 건강 팔찌 애호가로 소문나 있다. 요즘엔 오랫동안 앉아 있고, 술자리가 잦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실리콘 재질 등 제품 다양… 전문가 "원료·사용자 특성 따라 효과 달라"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건강 팔찌는 크게 토르말린, 티타늄, 게르마늄 등을 함유한 실리콘 재질과 자석을 함유한 자력발생 제품으로 나눌 수 있다. 그 밖에 일본산 귀양석, 숯이나 수액 등을 함유한 제품, 니켈 등의 금속 합금을 이온화시킨 팔찌도 있다.

처음에는 겉이 천으로 된 팔찌가 대부분이었지만, 땀이나 물에 젖으면 냄새가 나서 실리콘 소재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실리콘은 촉감이 좋고 색이 다양하면서도 땀이나 물에도 끄덕 없다.

업체에서 주장하는 대표적인 효능은 음이온과 원적외선을 방출시켜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도와 몸을 가뿐하게 만든다는 것. 착용하지 않으면 지속 효과는 없으며, 제품의 효과는 반영구적이라는 게 대부분이다.

8000원~1만원대… 재질따라 20만원 넘는 제품도

실리콘 팔찌는 하나에 8000원~1만원으로 '만만한' 가격이 대부분이지만, 재질에 따라 20만원을 넘는 고가 제품이나 팔찌·목걸이 세트도 있다. 젊은이들은 컬러풀한 실리콘 재질을, 나이가 많을수록 금속이 겉에 드러나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팔찌를 손목에 거는 그 순간부터 효과가 있다는 사람부터 밀가루 반죽을 약으로 믿고 먹으면 효과를 보는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일 뿐이라 일축하는 사람까지 반응은 다양하다.

박기복 원장은 손목에 팔찌를 하는 것은 경혈 자극 측면에서 일리가 있다고 한다. "손목은 경락의 주요혈이 위치하고 있어 각종 통증이나 내과 질환 치료에 중요한 부위"라며 "음이온을 방출하는 팔찌를 팔목에 착용하면 해당 부위의 경혈을 자극해 건강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링 테스트시 손목시계가 기혈 순환을 방해하는 것처럼, 팔찌도 "경우에 따라 기혈 순환을 도리어 방해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패션 액세서리, '심리 보험'용으로 제격

약국은 물론 온라인 쇼핑몰, 대형 할인 매장, 편의점, 스포츠 전문 매장은 물론 청소년이 찾는 팬시점까지 건강 팔찌는 다양한 곳에서 팔리고 있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이라고 모두 효능을 인정받은 건 아니다. 박상진(리더스 피부과 원장)씨는 “팔찌의 품질과 원료, 사용자의 개인적 특성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일단 믿을 수 있는 회사에서 적합한 재질과 함량으로 만든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러므로 재질과 수치를 꼼꼼히 살핀 후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는 게 좋다. 대단한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트렌드에 부합하는 패션 액세서리이자 기분 좋은 심리 보험 정도로 생각하면 후회가 없다.

원적외선은 혈액순환, 음이온은 피로회복 촉진

요즘 웬만한 건강 관련 제품에는 ‘원적외선’과 ‘음이온’이 약방의 감초다. 원적외선은 긴 파장을 갖기 때문에 피부 속까지 깊숙이 침투, 혈액 순환, 숙면, 면역력 강화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이온은 활성산소의 과잉 발생과 세포의 산화를 억제하며, 세포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피로회복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났다. 팔찌 재료로 쓰이는 토르말린, 수정, 호박 등의 전기석이나 맥반석, 자철광 등의 천연광석에서는 음이온이 발생한다. 음이온은 사용 용도에 따라서 적정 발생량이 다른데 액세서리의 경우 대략 ㏄당 600~1000개 정도가 발생하는 것이 좋다. 원적외선은 37∼40도의 온도, 5∼20um 파장에서 측정해서, ‘4∼14um’ 파장일 때 인체 흡수율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