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선동열 감독은 O형이다. O형은 목적지향적이다. 정열적이며 집단내 리더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체를 밝힌 선감독의 야구 스타일은 반드시 O형의 그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20대 초반부터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해온 선감독은 본심을 내색하기 보다는 애써 참는 쪽으로 표현방식이 개조돼온 것 같다. 다혈질인 O형과 달리 선감독은 매사 차분하다. 순위가 내려앉아도 겉으론 태연하다. 물론 때론 숨길 수 없이 O형의 로맨티스트적 특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선감독은 어지간해선 선발투수를 일찍 강판시키지 않는다. '내 너를 믿으니 네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라.' 한편으론 감상적으로 느껴지는 선감독의 지론이다.
B형 남자와는 사귀면 안 된다는 것은 편견이다. B형 남자 현대 김재박 감독의 야구 스타일은 A형에 가깝다. A형은 매사 신중하다. 변덕이 심하다는 게 B형의 특징이라면 김감독은 이같은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지키는 야구, 이기는 야구의 대명사가 돼온 김재박 감독은 한결같다. 위험을 감수하며 화끈하게 이기는 것 보다는 1점차를 지키는 치밀한 투수운용을 택한다. 이기기 위해선 1회에도 번트를 대야 한다. 사실 O형 선동열 감독이 수비를 강조하고, 1점차 승부에 가중치를 두는 건 B형 김재박 감독의 A형식 야구 스타일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A형인 SK 조범현 감독은 혈액형과 야구스타일이 거의 비슷한 케이스다. 김성근 전 LG 감독의 수제자 답게 전자계산기 같은 야구를 추구한다.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 2003년 취약한 전력의 SK호에 새로 승선해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끌어올린 건 이같은 치밀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초반 부진을 털고 4강권까지 치고 올라갔다. 지난해 부진했던 SK가 변신한 것은 조감독이 때때로 융통성이 없다는 A형의 단점을 털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A형인 한화 김인식 감독은 꼭 O형 같다. 온화하지만 내면의 힘이 가득한 진짜 리더의 모습이다. 야구장 안팎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곧바로 추종자로 만들어버리는 김감독의 능력. 한화가 예상을 깨고 3위권에서 펄펄 날고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물론 90년대 중후반 OB와 두산을 거치며 투수 분업화를 정착시킨 게 김감독이고 보면, 꼼꼼한 A형 형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같은 O형이라도 팀이 처한 상황에 따라 대처방식이 달라진다. 고려대 선후배인 두산 김경문 감독과 롯데 양상문 감독은 모두 O형이다. 혈액형 답게 시원시원한 야구를 하는 김경문 감독. 요즘은 타자들에게도 전파됐다. 두산 타자들처럼 이른 볼카운트에 승부하는 경우를 타팀에선 보기 어렵다.
롯데 양상문 감독의 어깨에는 '올해 만큼은 가을에도 야구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이 잔뜩 지워져있다. O형은 쉽게 흥분했다가 쉽게 포기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양감독은 한때 선두를 넘보다가 밑바닥까지 떨어진 팀을 다시 추스르느라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 포기란 없다. 야구장에서 만나게 되는 감독 중 가장 진지한 스타일. 롯데, 다시 5위권으로 뛰어올랐으니 포커페이스의 힘이 아닐까.
A형의 LG 이순철 감독은 O형에 가깝다. 그때그때 감에 따라 의외의 선택을 하는 편. 정확하게 수치화된 전력 이외의 '혼의 야구'를 바라는 스타일. 해태 출신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유일한 AB형인 기아 유남호 감독은 양쪽 특성이 다 나타난다. 때론 신중한 모습이었다가, 때론 누구도 예측 못한 선수 기용으로 상대팀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혈액형-성격 판별법의 허구성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증거. 삼성 김응용 사장과 선동열 감독은 모두 O형이다. 두 지도자를 같은 스타일로 보는 야구인은 없을 것이다. O형과 O형이 만나면 신뢰관계를 쌓지 못한다고? 김사장과 선감독은 서로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