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헤니요? 걔도 언젠가는 늙어요."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가수 김건모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어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발표한 10집 '비 라이크'(Be Like)의 컨셉트가 모두 녹아있는 한 마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2년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가요계에 데뷔 한 김건모는 앨범을 낼 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자타가 공인하는 '히트 제조기'로 불렸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 김건모 역시 이미지 수립이 절실했고, 이번 앨범엔 그런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편안한 노래 스타일 찾아 ★구두 5켤레, 7부바지 7벌
10집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난데없이 자신의 옷장 얘기를 꺼낸다.
"옷장을 열어보면 입고 있는 것을 빼고 6벌의 반바지가 쫙 걸려있다. 색깔만 다를 뿐 모두 같은 모양, 같은 브랜드 제품으로…. 옷만이 아니다. 지금 신고 있는 구두도 똑같은 것으로 5켤레나 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이자 그것이야 말로 지난 10여년간 가수 활동을 하며 가장 잘 맞는 스타일을 찾은 결과라고 밝힌다.
매일 같은 모양의 신발과 옷을 입는 것이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중의 눈과 귀는 엄청나게 무섭다. 리마리오가 한참 주가를 올렸다가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다니엘 헤니 역시 처음이니까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라며 "내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의상을 즐겨 입듯이 순간적인 인기보다는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 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느낀다"고 털어놨다
소재 쉬워질수록 멜로디는 고급화 ★발가락을 노래하는 남자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가사. 곡당 10번 이상 가사를 바꾸다 보니 작사가들이 더 이상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손을 들었을 정도다.
"어설픈 사랑 타령을 부를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앨범에 수록된 '발가락'이 가장 좋은 예가 될 듯한 데 이 노래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단순한 사랑 노래였다. 하지만 가사를 계속 수정하다보니 경쟁력을 갖춘 노래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김건모는 앞으로 앨범을 낼 때마다 노래의 소재를 더욱 넓힐 작정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그 의미를 노래로 새롭게 만들어보겠다는 것.
"의자, 쓰레기통 등 노래의 소재가 쉬워질수록 멜로디는 훨씬 고급스러워져야 한다. 또 노래도 신경 써서 불러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이 남은 듯하다."
후배들에 술 살수 있어 가장 행복 ★분당의 술꾼?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은 '남이야'와 '서울의 달'. 흥겨운 스윙 곡으로 어깨가 절로 들썩거리게 만드는 '남이야'는 간결한 멜로디와 떠나간 사랑을 애절하게 표현한 가사가 매력이다. 기타와 대화하듯 쏟아내는 애드리브가 돋보이는 '서울의 달'은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블루스라는 장르를 김건모 만의 특유한 색깔로 빚어낸 곡이다.
굳이 타이틀 곡을 2곡 선정한 이유를 묻자 음반을 왜 발표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돈을 벌어 보겠다고 음반을 발표한 것이 아니다. 일년 쉬면서 보니까 선후배 가수 사이에서 술을 사는 사람이 없어 넘 안타까웠다." 결국 술 얘기다.
김건모에게 술은 보양식이다. 평소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지 못하지만 술을 한잔씩 하고 8시간 이상 푹 자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는 것. 요즘은 홍경민, 탁재훈과 자주 술자리를 가진단다.
"가장 행복한 것은 아직은 후배들에게 술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대신 술을 먹을 때는 반드시 웃을 수 있는 소재를 안주삼아 먹자는 것이 철칙이다."
어느덧 가요계의 맏형 격이 되어버린 김건모의 웃음소리가 더 커지는 이유에 고개를 끄덕일 만 하다.
(스포츠조선 이정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