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는 1921년 창립된 조선어연구회를 모태로 하고 있다. 이 해 12월 3일 임경재(휘문학교 교장), 최두선(중앙학교 교장), 이규방(보성학교 교두), 권덕규(휘문학교 교사), 장지영(조선일보 문화부장), 이승규(보성학교 교사), 신명균(한성사범 졸업생) 등 7사람은 휘문학교에 모여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말과 글을 잃으면 민족도 멸망한다"고 가르친 구한말 국어학자 주시경의 제자들이었다. 주시경은 1914년 타계할 때까지 보성중학에 일요학교를 차리고 젊은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쳤다. 조선어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1949년 9월 다시 한글학회로 개칭했다. 조선어학회는 1926년 '한글날'을 제정하고 1932년 학술지 '한글'을 창간했으며 1933년에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말 표기의 준거가 되고 있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다. 한글학회의 가장 큰 사업은 1929년 시작한 우리말 사전 편찬사업이었다.

하지만 일제는 1938년 조선어 교육을 금지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강요했고, 1942년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을 검거, 최현배·이희승·이중화·이극로·이윤재 등 13명을 구속했다. 우리말 사전 편찬작업은 광복 후로 이어져 1957년 '우리말 큰사전'이 전 6권으로 완간됐다. 편찬작업 28년 만의 일이었다.

광복 직후 한글학회 임원과 사전편찬원들. 뒷줄 왼쪽 네번째가 이강로 한글학회 명예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