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집 새벽 등잔 파르르 꺼지려는데/ 일어나 별을 보니 헤어질 때로구나/ 껴안고 말없이 둘 다 말없이/ 잘가라 하려니 기어이 울음 터져'. 다산(茶山) 정약용이 1801년 자신은 강진으로, 둘째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갈 때 서로 헤어짐을 슬퍼하며 지었다는 '율정별'(栗亭別·일명 형제참별시)이다. 둘은 서울에서 나주까지 함께 내려왔으나 나주 율정에서 갈라서야 했다. 다산은 그날 새벽 주막집에서 형과 부둥켜안고 절절한 형제의 정을 노래했다.
▶가슴 시린 우애가 무색한 게 골육(骨肉)간 싸움이다.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는 아버지가 죽고 왕위에 오르자 매사 동생 조식(曹植)을 구박했다. 동생의 문재(文才)를 시기했던 형은 동생에게 일곱 걸음 만에 시 한수를 지으라고 했다. 못 지으면 그걸 트집잡아 죽일 양이었다. 조식이 눈물을 흘리며 '칠보시(七步詩)'를 읊었다. '콩깍지를 불태워 콩을 볶고/ 콩은 솥안에서 운다/ (콩깍지와 콩은)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 그리 서로 들볶는가'. 형은 뉘우쳐 동생을 놓아주었다.
▶형제에 관한 여러 나라 속담이나 격언을 보면 우애보다 다툼을 소재로 한 게 더 많다. 유태인 속담에 '적(敵)이 되고 만 형제는 그 어떤 적보다 심하다'는 말이 있다. 터키에선 '형제 사이도 돈에서는 남'이라 하고, 한술 더 떠 일본에선 '형제는 남이 되는 시작'이라고 한다. 성경에도 동생을 죽인 카인이 등장하는 걸 보면 골육상쟁은 인간에게 내재한 '원초적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두산그룹의 형제간 다툼이 갈수록 낯뜨거운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동생인 박용성 회장측이 박용오 전 회장이 타던 자동차를 회수하기 위해 경찰에 분실신고를 내고, 형이 이용하던 골프장 3곳에 회원권 정지 통보까지 했단다. 과거 몇몇 재벌그룹의 형제들도 경영권 다툼으로 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들 형제는 지금도 대부분 부모 제사를 따로따로 지낸다 하니 형제 싸움 중에서도 쉽게 아물지 않는 것이 재산다툼인 모양이다.
▶'전씨분재(田氏分財)'라는 고사가 있다. 수(隋)나라 때 전진·전광·전경 삼형제는 우애가 깊었으나 재물을 나누면서 사이가 틀어져 뜰에 있는 자형수(紫荊樹)라는 나무까지 악착같이 나눠 갖기로 했다. 그러자 이튿날 아침 나무가 절로 말라 죽어버렸다. 이를 보고 형제들이 뉘우치자 나무는 다시 살아 무성한 꽃을 피웠다. 지금 두산그룹이 '자형수' 같은 처지라는 것을 두산가(家) 형제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준 논설위원 junlee@chosun.com)
입력 2005.08.23. 19:00
100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