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프레스턴 스터지스는 할리우드 황금기 최고의 코미디 감독이었습니다. '레이디 이브' '모건 크릭의 기적' '팜 비치 스토리' 같은 그의 탁월한 코미디는 이후 수십년간 할리우드 후배들이 뛰어넘을 수 없었던 천재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사실 그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산 감독도 드물 겁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경영수업까지 받았던 그는 연출 데뷔작 '위대한 맥긴티'가 대성공을 거둔 직후부터 4년간 7편의 히트작을 쏟아내며 최고 감독으로 각광받았습니다. 하지만 영광은 딱 4년 뿐이었지요. 소속사를 옮기며 이력이 꼬인 뒤 실패가 잇따랐고 '고집불통의 완벽주의자'로 찍혀 발 붙일 곳이 없어졌으니까요.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모두 파탄지경에 이른 그는 옛 동료들의 동정으로 각색 일을 얻어 어렵게 남은 여생을 보내야 했지요.
1941년작 '설리번 여행기'의 주인공인 영화 감독 설리번은 스터지스의 자아가 투영된 인물입니다. 유명 코미디 감독인 설리번은 대공황기 미국의 빈곤 문제를 예리하게 다룬 비극을 만들려 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경험해보기 위해 남루한 복장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강도를 당한 데다가 우발적 행동으로 투옥까지 됩니다.
신분을 증명하지 못해 강제 노역에 종사하던 설리번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가난한 남부 흑인들 교회에 갔다가 때마침 틀어준 미키 마우스 만화영화를 봅니다. 미키와 플루토가 넘어질 때마다 폭소를 터뜨리는 사람들 틈에서 어리둥절하던 설리번도 결국 실컷 웃게 됩니다. 누명을 벗고 돌아온 설리번은 영화사 간부들에게 사회의식이 담긴 비극을 연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고나서 이렇게 말하지요. "난 계속 코미디를 만들 겁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웃음이 그들이 가진 전부니까요. 그게 대단한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미친 여정에서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요?"
예술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보입니다. 창작을 통해 어떤 사람들은 벽을 부수려 하고 길을 넓히려 합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 하지요. 그런데 스터지스 같은 사람은 애써 극장을 찾아온 관객들을 세상에서 격리시켜 그저 두 시간 동안 즐겁게 만들려 합니다. ‘설리번 여행기’보다 한 해 먼저 나왔던 존 포드의 영화 ‘분노의 포도’처럼, 30년대 대공황기의 참혹한 실상을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와 구조적 문제까지 간파하는 통찰력으로 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의 포도’가 그렇듯, ‘설리번 여행기’ 역시 걸작이고 소중합니다. 벽을 트고 길을 내려는 의지 못잖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함께 웃고 울어보려는 마음도 귀중합니다. 이 영화 시작 부분엔 이런 헌사가 붙어 있지요. “떠돌이 약장수와 어릿광대와 익살꾼들, 어느 시공간이든 우리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려 노력했던 사람들, 우릴 웃게 만들어줬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약장수와 어릿광대 그리고 익살꾼에 더해서, 스터지스의 이름도 기억합니다. 약과 웃음을 함께 팔아야 했던 그 모든 장터의 떠돌이들처럼, 그 자신 짧은 영광과 긴 좌절을 맛보았던 고통스런 삶의 여행자였기에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