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와 대한민국 1호 국새(國璽)에 이어 최초의 대통령인(大統領印)과 대한민국국회인(大韓民國國會印)도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제작했던 주요 관인(官印)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현재 사용 중인 대통령인과 국회인은 1960년대 초 두 번째로 만든 것이다.
◆대통령인·국회인 어디로 갔나
대통령인은 국새를 날인하는 법령공포문, 훈·포장증, 3급 이상 공무원 임명장 등에 날인하거나 대통령 훈령, 지시 등 대통령 재가 문서에 별도로 사용된다. 국새만큼 중요한 국가의 상징인 셈이다. 국회인도 국회의장인과 함께 공문서에 날인하는 국회의 주요 관인이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각 부처로부터 넘겨받은 국가 기물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면서 국새와 함께 대통령인도 분실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 역시 "국회인이 어디엔가 보관돼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 관인이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부 관인은 1948년 8월 정부수립과 함께 일괄적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한글전용 정책을 펴면서 1962년 말 관인도 대부분 한글로 교체했다. 국가기록원은 이 시점에 관인이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국새와 대통령인은 내각사무처(현 행정자치부) 총무국에서 관리하고 있었고, 국회인은 국회사무처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국가기록원이 보유 중인 1954년 관인대장에는 분실된 1호 대통령인이 1948년 8월 제작됐으며, 재질은 상아, 크기는 '1寸5分角(약 4.5㎝)'이라고 돼 있다. 대통령인은 국새와 달리 특별한 인뉴(印?·손잡이)는 없었다.
1948년 국새와 국회인을 제작한 천상당(天賞當)에서 만든 기록에 따르면 국회인은 한문 전서체로 '大韓民國國會之印(대한민국국회지인)'이라고 돼 있으며 인뉴는 국새와 비슷한 네발 짐승 모양을 하고 있다. 또 재질은 은(銀), 크기는 '2寸(약 6㎝)'이라고 기록돼 있다.
◆최초 공개 대통령인조각 촬영 사진
본지는 국새와 대통령인·국회인을 제작했던 천상당의 주인 박균달(朴均達·1953년 작고)씨의 둘째 아들 덕구(德求·66·현 강원보일러 회장)씨로부터 당시의 사진을 입수했다. 전각(篆刻)의 대가였던 박씨가 대통령인을 새긴 뒤 가족, 직원들과 기념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속 인장엔 '大統領印'이라고 새긴 인문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분실된 1호 대통령인에 대한 사진 자료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박덕구씨는 "아버지께서 대통령인을 새길 때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한 뒤 하얀 한복을 입고 작업하셨다. 외부인은 물론 가족들도 들여다볼 수 없는 밤에만 작업을 했으며 보름 정도 걸려 전각을 했다"고 증언했다.
◆유일한 관인대장 새인도고
본지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입수한 '새인도고(璽印圖攷)'라는 책에는 정부수립 당시 정부가 제작한 모든 관인의 목록과 인문, 재질, 크기가 기록돼 있다. 현재 건국 초의 관인대장이 없어 새인도고는 중요한 사료다.
새인도고는 박균달씨와 당대 최고의 서예가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1953작고)씨가 1948년 8월 관인 178점을 정부에 납품한 뒤 만든 관인납품대장이다. 글은 김씨가 쓰고, 전각은 박씨가 한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1년여 동안 분실된 국새와 대통령인을 찾는 과정에서 이 책을 확인하고 소유자로부터 기증받기로 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관인 178점을 제작했다면 당시 정부에서 발주한 관인제작 용역을 천상당에서 거의 독점한 것 같다"면서, "관인대장의 기록과 새인도고의 기록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상당은 당시 큰돈을 벌었다. 박균달씨는 "관인 납품 이후 직원이 정부에서 돈을 받아 꽹과리와 북을 치면서 리어카에 싣고 왔는데, 이 때문에 충무로 일대가 떠들썩했다"면서 "아버지가 국새와 대통령인을 새겼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 시절 정·재계에서 힘깨나 쓰던 사람들은 모두 천상당에서 직인을 팠다"고 말했다. 서울 충무로2가에 있던 천상당은 6·25전쟁 이후 파고다공원 주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1968년쯤 문을 닫았다.
새인도고엔 영전지새(榮典之璽)라는 범상치 않은 관인이 하나 등장한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국새처럼 은으로 만들었고 네발 짐승 모양의 인뉴로 보아 중요한 관인인 듯하나 정확한 용도와 사용처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작년 8월부터 국새, 대통령인 등 각종 관인을 추적하고 있는 국가기록원은 1호 국새 복원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찬우(朴贊佑) 국가기록원장은 "각 기관의 기록문서뿐 아니라 관인, 책상, 현판도 중요한 국가기록"이라면서 "분실된 기록물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각 기관 보유 기록물에 대한 보존·제출 요청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