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의 삶은 한 편의 영화다.

'파란만장'이란 단어가 과하지 않을 만큼 가수로서 여자로서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그녀 의 사랑노래가 심상치않게 들리는 이유다.

10ㆍ26이란 사건에 휘말리면서 '꼬이기' 시작한 그녀의 인생은 25년이 지난 올해에서야 제 자리를 찾았다. 전국 투어를 돌며 팬들과 만났고, TV 프로그램에 나가 그간의 얘기를 허심탄 회하게 털어놓았다.

25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톱가수'의 대우를 받게 된 심수봉. 2005년이 다시 태어난 해라는 그녀의 노래와 사랑을 지상콘서트로 연출했다.

도와주신 박태준 - 고 정주영회장 못잊어

▶그때 그사람

가수로서 인생에 가장 소중한 고마운 인연을 꼽는다면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10ㆍ26 이후 가수활동을 못하게 돼 생계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친아버지처럼 자상하게 챙겨주셨다. 요즘도 명절 때면 찾아뵙는 분이다. 돌아가신 정주영 회장도 든든한 후원자셨다. 그랜저 신차가 나왔을 때 여섯번째로 차를 뽑아주시기도 했다.(웃음)

이웃에 살던 외항선 타는 부부의 정 담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제목 때문에 외설시비에까지 휘말렸던 노래다. 부부의 사랑을 그린건데 참 황당했다. 이웃에 외항선을 타는 남편을 둔 여자가 있었다. 그 부부를 인천항까지 태워준 적이 있는데 그 부부가 헤어지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 3개월 만나고 1년6개월 떨어져있는 부부의 삶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남편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내 흘리던 그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부부의 정이 애절하고 깊었다. 남녀의 사랑은 정말이지 배와 항구같다.

남편에 프로포즈 할때 부른 노래

▶비나리

지금 남편에게 프로포즈할 때 부른 노래다. 지난 93년 MBC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PD와 DJ로 만나 부부가 됐다. 우리 아이들이 매파가 됐다. 우리 둘을 이어주려고 주위 사람들이 애를 많이 썼다. 사실 사랑에 대해 용기가 없는 편이다. '비나리'란 노래가 처음엔 이뤄지지 않는 사랑이야기였는데, 내 친구들이 듣더니 펄펄 뛰더라. 가수는 노래대로 가는 법이니 해피엔딩으로 가사를 다시 쓰라고 난리들이었다. 그래서 고친 노래가 '비나리'다. 데이트할 때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들려줬고, 남편이 "같이 살자"고 했다. 사람 인연이란 그런 것 같다.

딸 미국으로 보내면서 '생이별의 아픔'

▶아이야

두번째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을 이혼하면서 미국으로 떠나보냈다. 공항에서 그 여섯살짜리 아이를 떼어보내고 피눈물을 흘리며 쓴 노래다.(심수봉 콘서트 때 사연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면 객석은 울음바다가 된다) 아이와 생이별하는 엄마의 심정은 아무도 모를 거다. 그 아이가 3년전 나를 찾아왔다. 다시 찾은 딸이라 2년동안 뉴욕에서 뒤늦게 엄마노릇하며 살았다. 요즘도 딸아이 얼굴을 보면서 죽을 때까지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나님 사랑 … 내 노래중 가장 아껴

▶백만송이 장미

일찍 아버지를 잃어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 굶주렸다. 평생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많은 사랑을 한 것 같다. 사랑 밖에 모르고 산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마지막 종착지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이상의 기쁨이 없다. '백만송이 장미'는 영접의 감동을 표현한 거다. 내 노래들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앞으로 찬양 봉사도 많이 하고 싶다.

운명과도 같은 자식들에 대한 애정

▶사랑 밖에 난 몰라

사랑에 대해서는 도통했다. 뭐든지 물어보라(웃음). 이 노래가 '너는 내 운명'이란 영화에 들어가 다시 사랑받고 있다고 들었다. 전도연씨 노래하는 장면 봤는데, 참 잘하더라. 글쎄, 삶에 있어서 많은 사랑이 있지만 오늘은 아이들 얘기를 하고 싶다. 늘 딸 얘기만 해서 우리 아들들 불만이 많다. 큰 아들은 집안에서 '랍비'로 통할 정도로 현명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큰 아들과 의논한다. 올해 대학생이 된 둘째 아들도 나이답지 않게 의젓하다. 올 한해는 뭣보다 노래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한 해였다. 늦었지만 25주년 기념 음반도 내고, 데뷔 이후 제일 열심히 활동했다. 이제 일이 좀 풀리는 것 같다.

15년 살던 집 허물고 새 집 작업중
이젠 세상과 같이 호흡하면서 살래요

▶앙코르

요즘 심혈을 기울여 짓고 있는 새 집 이야기로 수다방을 마무리했다. 15년을 살던 집을 부 수고 새 건물을 짓고 있다. 지하에는 스튜디오와 작업실을, 1층에는 유기농 음식점을, 2ㆍ3 층은 살림집을 넣는다. 옛날집이 기자들이 들이닥쳐도 절대 찾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 다면 새 집은 오픈되고 밝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번엔 공사를 하면서 보니, 예전집이 내 인 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세상과 단절돼 살았지만, 남은 인생은 사람들과 세상과 함께 호흡하며 살고 싶다.

▶매니저 전홍준이 본 심수봉.

그 나이대의 거의 유일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모든 가사 가 자신의 얘기라서 더욱 절절하고 가슴에 와 닿는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만큼 인생과 노래 에 깊이가 있다. 호ㆍ불호가 분명한 스타일이고 자기 사람한테는 아낌없이 정을 퍼붓는 스 타일이다.

가요계에서 조용필씨와 함께 무대 위에서 가장 까다로운 가수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노 래에 관한 한 철두철미한 진정한 프로다.

올해는 가수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해,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낸 것 같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제주도에서 콘서트를 하며 보냈고, 31일에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디너쇼를 갖고 한해를 마감한다. 내년에는 스케줄을 더 빡빡하게 잡아 열심히 활동시킬(?) 작정이다.

(스포츠조선 정경희 기자)
(김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