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차관급 고법 부장판사 출신으론 처음으로 구속된 조관행(趙寬行·50)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구속영장에 나타난 비리 행태는 마치 법조브로커 김홍수씨에 의해 고용된 ‘관선(官選) 변호사’나 다름없었다. 관선 변호사는 다른 판·검사에게 사건을 청탁해 해결하는 판·검사를 일컫는 법조계의 은어다. 조씨가 김씨로부터 청탁받은 사건은 피의자 보석(保釋) 등 형사사건에서부터 여관 영업정지 해제 소송, 골프장 사업권 소송에 이르기까지 민·형사·행정 등 모든 법원 업무를 망라했다.
◆사건 해결해주고 현금·고급 가구 받아=서울중앙지법이 발부한 조씨 구속영장에 따르면, 조씨는 2001년 말 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부동산 가처분(假處分) 신청을 해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김씨의 동생이 경기도 일산에 10층짜리 건물을 신축했는데 땅 소유자가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분양을 못하고 있으니 담당 판사에게 부탁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김씨는 법원 인근의 서울 서초동 일식집에 주차된 조 전 부장판사의 승용차에 현금 1000만원을 실었다. 얼마 후 가처분 사건이 김씨 청탁대로 승소하자 김씨는 서울 역삼동의 유흥주점에서 조씨에게 현금 500만원을 추가로 줬다.
조씨는 2002년 2월 "부천지원에 여직원 오빠가 '카드 깡'으로 구속돼 있는데 보석으로 풀려나도록 해달라"는 김씨의 청탁을 받고 김씨에게 보석신청서 양식을 보내줬다. 보석신청서를 피고인 부인 명의로 재판부에 제출하라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결국 보석은 허가됐다. 이 대가로 조씨는 김씨로부터 식탁과 소파 1000만원어치, 시가 3000만원짜리 이란산 수입 카펫 2장 등 7000만원어치의 선물을 받았다.
2002년 4월 조씨는 김씨로부터 영업정지처분을 받은 여관업자 송모씨측의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았다. 당시 김씨는 송씨측 사람을 직접 데리고 조씨의 법원 사무실을 찾아가기도 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조씨는 또 2003년 김씨를 통해 양평 TPC 골프장 소송 1심에서 패소한 최모씨측으로부터 "승소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3차례에 걸쳐 1500만원을 받았다. 최씨측은 항소심에서 이겼다.
조씨는 김씨로부터 2001년 10월부터 작년 4월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2200만원을 용돈으로 받아왔다. 검찰은 "김씨가 조씨에게 청탁한 사건 중 현재까지 조사된 90%가 승소하는 등 김씨의 뜻대로 처리됐다"며 "조씨가 실제 다른 판사들에 힘을 썼는지도 수사 중"이라고 했다.
◆검사·경찰, 돈 받고 내사종결, 청부수사=조씨와 함께 구속된 김영광(金榮光) 전 검사와 민오기(閔伍基) 총경도 김씨로부터 받은 액수는 조씨보다 적지만 죄질은 그에 못지않다는 게 영장을 심사한 판사의 말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직접 담당한 사건과 관련한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고 김씨 뜻대로 사건을 처리해줬다는 것이다.
김 전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재직하던 작년 1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자신이 내사하던 김씨로부터 1000만원을 받고 사건을 없던 일로 덮어버렸다.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이었던 민 총경은 3000만원을 받고 김씨의 청탁에 따라 청부수사에 나섰다가 다시 수사를 말아달라는 부탁에 수사를 중단했다. 국가기관이 돈 몇 천만원에 농락당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