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폭발력, 카리스마, 열광…. 하나같이 뜨겁고 강렬하다.

이쯤 되면 윤곽이 잡히는 인물이 있다. 나이를 잊은 영원한 노래꾼 인순이(49)다.

그녀는 '국민가수'로 불린다. 더없이 영예로운 칭호다. 따지고 보면 되레 그 같은 대접이 조금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재즈부터 트로트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가요무대는 물론이거니와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 팬들 앞에서도 어색하지 않다.

그게 인순이의 저력이요, 가치다.

어느 한 방향 치우친 곳이 없다.

팬에 연령층이 따로 없고, 어느 무대인들 제약이 없으니 그녀야말로 진정한 국민가수가 아닌가 싶다.

가끔은 다양성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중간하다는 점이다. 타깃이 딱히 좁혀지는 맛이 없다. 재주 많은 놈 밥 굶기 십상이라 했던가. 아닌 게 아니라 잠깐 손해를 본 적도 있다. 95년이었다. 박진영이 만든 '또'를 발표했는데 FM에서 안 틀어줬다. '늙다리'가 부르는 노래라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인순이는 모든 무대를 열정으로 녹여내며 번번이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예술에는 연령이 없잖아요. 그냥 보고 느끼는 거죠. 좋으면 박수치고. 한데 우리나라는 유독 나이를 따지고 그에 걸맞은 노래를 기대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렇다. 쉰을 바라보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일흔이 다 된 티나 터너 공연을 20~30대가 보니 말이다.

아무래도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다. AM-FM 라디오에 가요무대, 그리고 신세대들의 잔치인 TV 순위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하니 말이다. 얼마 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초대받았을 때는 인터넷 홈페이지가 다운됐고, 댓글만도 열 페이지 넘게 쏟아졌다. 담당 PD도 러브레터 역사상 없던 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초 세 곡 부르기로 하고 나갔다. 한데 인순이를 그냥 놔둘 팬들이 아니었다. 결국, 앙코르로 7분짜리 '거위의 꿈'까지 부르고서야 무대를 내려올 수 있었다. 덕분에 앞서 출연한 김C의 토크 장면이 편집 당하고 말았다. 두고두고 미안한 일화가 될 것 같다. 요사이 인순이는 문득문득 세월을 느낀다. 특히 자식뻘 되는 신세대들과 함께 있을 때 그렇다. "어려워서 그런지 인사들을 안 해요. 먹을 것도 자기네들끼리만 사다 먹고 말이에요.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고, 먹을 때 왕따 당해 보세요 얼마나 서러운지." 해서 기대를 접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인사를 하면 되지, 뭐.' 그리고는 후배들을 찾아다녔다. "안녕하세요, 인순이에요." 얄미워 욕보이려고 한 짓은 아니지만 후배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부터 모두 친해져 왕언니가 됐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묘안을 찾아냈다. '선후배의 단절된 끈을 이어 보자.' 그래서 지난 4월 홍대앞에서 판을 벌였다. '다 모여라!'는 기치를 내걸고 10대부터 원로까지 두루 모셨다. 최희준 최백호 남진 서수남 정훈희 슈가 플라이투더스카이…. 무려 60팀. 그야말로 다 모였다. 욕조에다 맥주 부어놓고 춤추며 땀 흘리며 너나없이 망가졌다. "그동안은 남들 위해 놀았는데 이번엔 우리를 위해 푸지게 놀아보자"며. 귀찮은 언론은 싹 따돌린 채. 물론 이날 판은 인순이가 '쐈다'. "내년엔 동네 오빠들 입는 츄리닝에 슬리퍼 끌고 모일 거예요. 망가지기 딱 좋은 복장 아니에요?"

오지랖 넓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추호도 자기 일에 소홀함은 없다. 늘 부르는 노래라고 해서 건성건성은 없다. 똑같은 노래라도 시간, 장소, 계절에 따라 느낌을 달리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스케줄은 최소한 한 달 전에 받는다. 한 무대를 위해 무려 한 달 동안 준비를 하는 셈이다.

가령 '예스터데이'를 부를 일이 생기면 자료부터 모은다. 모든 가수들의 예스터데이를 수집해 분석한 뒤 가장 맞는 걸 택한다. 때론 여러 사람의 예스터데이를 짜깁기해 '인순이의 예스터데이'로 만들기도 한다. 과연 국민가수는 히트곡 몇 개, 휘리릭 들불 같은 인기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끝없는 노력과 도전, 그리고 지독한 자기 들볶기는 기본이다.

초라하고 열악한 무대도 마다 않는다. 결국, 작은 무대를 내가 화려하게 수놓느냐, 화려한 무대서 내가 작아지느냐 싸움 아니던가. "저는 대중가수예요. 대중이 있는 곳이면 어느 무대든 서야죠. 전국 곳곳의 팬들이 인순이를 만들었으니 그들은 인순이를 볼 권리가 있는 거죠." 이따금 무대 초라하다고 투덜대는 후배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인 듯싶다.

1년에 두 달 빼고 늘 무대에 서 있지만 힘들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경기도 분당의 집 뒷산을 매일 아침 오르내리는 부지런이 체력을 지켜 주는 모양이다. 한데 지금은 비상이다. 미국에 두 달 휴가 다녀오는 사이 4㎏이나 불었다. 애초부터 각오하고 원 없이 먹어댄 결과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보톡스 맞았느냐며 호들갑을 다 떨었을까. "다이어트 시작했어요. 하루 두 끼만 먹어요. 오후 4시 이후엔 아무것도 안 먹고요."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쁜 일이 있어 쪄도 행복하고, 굶어도 행복하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수녀가 되려 했던 사춘기의 기억. 남의 눈에 띄는 게 싫어 행동반경 좁은 병원에 묻히려고 간호사를 꿈꿨던 기억. 세월 속에 그 아픈 기억들도 점점 작아진다. 대신 그 자리를 남편과 '애기'(인순이는 중1 짜리 딸 세인이를 이렇게 부른다), 그리고 일로 인한 행복이 채워간다.

인순이의 남은 꿈도 소박하다. "할 수 있을 때까진 깔깔대며 일을 즐길 거예요. 그리고 멋있게 늙고 싶어요."
(스포츠조선 엔터테인먼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