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향기(香氣) 중에서 어떤 향기가 가장 명품 향기인가? 이 질문을 추사 김정희에게 던졌다면, 추사는 아마도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라고 대답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샤넬 5’ 같은 향수는 돈만 주면 살 수 있지만, ‘문자향 서권기’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고귀한 향기이다. 그 사람의 체취에서 자연스럽게 문자향과 서권기가 풍겨져 나오려면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수밖에 없다. 놀더라도 서재에서 놀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 선비들은 수많은 책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 서재인 ‘만권당(萬卷堂)’을 갖는 일이 꿈이었다.
고려 충선왕(忠宣王)은 왕위를 물려주고 원나라 연경에서 살면서 ‘만권당’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원나라의 조맹부, 원명선과 같은 대학자들을 자신의 만권당에 오도록 하여 항상 학문적인 토론을 하며 놀았던 모양이다. 충선왕은 고려의 석학이었던 이제현(李齊賢)을 연경의 만권당에 불러서 이들과 사귀도록 하기도 하였다. 구한말에는 ‘기학(氣學)’으로 유명한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1803~1877)의 서재가 당시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서재 가운데 하나였다. 살림이 넉넉했던 혜강은 책을 구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최신 서적이 간행되었다는 정보만 입수하면 천금을 주고라도 무조건 그 책을 입수하였다고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와 같은 방대한 저술을 남겼던 이규경(李圭景) 같은 인물도, 당시 중국에서 나온 ‘영환지략(瀛環志略)’과 같은 최신 서적은 혜강 서재로 가야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근래에 구경한 서재 가운데는 작고한 이규태(李圭泰) 선생의 서재가 인상적이었다. 지하실 20평 크기의 서재에는 어림잡아 1만8000권의 책이 나무와 철재로 된 서가(書架)에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부터 이와나미(岩波) 문고본에 이르기까지 책의 크기와 분야도 다양하였다. 대학교수들 서재는 자기 전공분야에만 책이 몰려 있지만 이규태 서재는 전방위에 걸쳐 책이 모아져 있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거실을 서재로 만들자’는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TV와 소파를 치우면 30평 아파트 거실에다가도 ‘천권당(千卷堂)’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천권당에서 놀아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