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 말 나는 믿을 수 없어~.” 87년 당시 TV, 라디오에 귀를 막고 살지 않았다면 아직도 누구나 그 선율이 선명한 노래 ‘사랑하기에’. 눈꼬리가 살짝 처진 선량한 얼굴의 대학생 가수 이정석(40)은 이 곡으로 ‘톱가수’ 반열에 올랐다. 한해 전 대학가요제에서 자작곡 ‘첫 눈이 온다구요’로 이미 심상치 않은 신인 대접을 받던 그였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끊임없는 방송과 밤 무대에서 고갈되던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 미국 유학을 떠났던 것. 다시 노래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7년 그는 ‘친구야’라는 곡을 들고 다시 대중을 찾는다.

“잘 모르시겠지만 99년도에 6집을 발표한 적이 있어요. 거의 반응이 없었죠. 그때 오랜 공백의 한계를 느꼈는데, 이번에 다시 용기를 냈어요. 제 또래들이 편하게 흥얼거릴 만한 음악을 만들어봤습니다.”

▲이정석의 새 노래‘친구여’를 함께 부른 주인공들. 왼쪽부터 박진형, 이정석, 박경서, 차진영

2년 전까지 건설 시행사 부사장으로 지내던 그는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음악"이라는 깨달음 속에 새 음반 작업을 지속했다. 10여 곡을 작곡하고 연습도 했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에 3곡을 담은 싱글 음반을 먼저 발표했다.

"아무래도 20대와 40대의 목소리는 다를 수밖에 없죠. 예전의 제 음성을 기억하는 팬들이 낯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친구야'에는 이정석의 오랜 팬이자 후배 3명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성악가 박진형(38·수원대 교수), 가수 차진영(37), 박경서(36)가 그들. 이들은 모두 학창 시절 소풍이나 교내 장기자랑에서 '사랑하기에'를 열창했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차진영은 " '사랑하기에'의 이정석은 목소리가 예리하게 고음으로 올라가면서도 힘이 넘쳤다"며 "지금은 그 음색에 연륜이 좀 더 묻어나 좋다"고 했다. 박진형은 "노랫말을 맛깔스럽게 뱉어내는 테크닉이 참 뛰어난 분"이라며 "우리 셋은 모두 이정석이란 가수를 좋아하고 그의 노래를 많이 불러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성이 통할 수 있었다"고 했다.

80년대 후반 5년여의 가수 생활을 통해 승용차 스텔라 한 대 받은 게 수입의 전부라던 이정석. "지금은 가요계 환경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면서도 "요즘 나오는 노래의 감성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너무 직설적이에요. 노랫말이 좀 서정적이고 은유적이라야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데 그런 노래 찾기가 힘들죠. 그래서 오래 가는 노래가 없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