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에다의 실질적 지도자는 오사마 빈 라덴이 아니라 아이만 알 자와히리(Ayman Al-Zawahiri)다.”
빈 라덴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마이클 매코넬 미국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이 지난 11일 ABC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고, 그 이틀 전 브루스 호프만 조지타운대 교수도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알 카에다의 실세는 알 자와히리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매코넬 국장은 알 자와히리를 두고 ‘지적 지도자(intellectual leader)’라는 표현을 썼다. 말하자면 빈 라덴은 ‘바지 사장(명목상 대표)’에 지나지 않고, 모든 작전과 세부 지침은 알 자와히리 손에서 이뤄진다는 얘기다. 매코넬은 또 알 카에다의 무게 중심이 이미 빈 라덴의 사우디계에서 알 자와히리의 이집트계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패권 이동은 미 정보기관에서 오로지 빈 라덴 잡기에만 골몰하는 동안 자연스레 이뤄졌다. 빈 라덴은 감시망을 피해 다니느라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렸고, 그 사이 2인자였던 알 자와히리가 전권을 휘두르게 된 것. 내부 회의뿐만 아니라 대외 성명 포고에서도 알 자와히리는 빈 라덴을 제치고 알 카에다의 주도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뉴스위크는 최근 알 자와히리의 노선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생기면서 알 카에다 내부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 알 자와히리의 입지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했다.
사실 빈 라덴이 주목받은 것은 서방 언론들이 그를 9.11 테러의 상징으로 자꾸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알 자와히리도 이력으로 보면 빈 라덴 못지않은 강경 테러분자에 전설적인 이슬람 전사다. 그는 1998년 224명이 숨진 탄자니아, 케냐 미 대사관 폭발 테러 배후로 지목되어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2500만달러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다. 빈 라덴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테러리스트 2위에 올라있고, 모국 이집트에서는 각종 테러 관련 혐의로 결석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 받은 상태이기도 하다.
빈 라덴을 처음 만난 1986년 이전에 이미 이집트 내 급진 이슬람 조직인 EIJ(Egyptian Islamic Jihad)를 이끌며 산전수전 다 겪은 혁명가였고, 1981년에는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던 안와르 사다트 암살 공모 혐의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미 언론에서는 오히려 빈 라덴이 6살 많은 알 자와히리(1951년생)를 만난 뒤 더 과격해졌다는 분석을 내려놓고 있다. 이슬람 테러 관련 책을 낸 자일스 포든은 “알 자와히리를 단지 빈 라덴의 오른팔 정도로 간주한다면 이는 그를 매우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알 자와히리는 부유한 이집트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다. 그의 집안에 의사와 학자가 많았던 까닭에 알 자와히리는 얌전하고 학구적이며 신실한 이슬람 소년으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청소년기이던 1960년대 이집트를 휩쓴 이슬람 근본주의 열풍에 휘말리며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서방의 영향을 거부하고 순수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에 감화된 알 자와히리는 카이로대에서 의학을 전공하며 지하 조직에 몸을 담갔다. 이후 파키스탄 여행 중에 아프가니스탄 피난민들을 치료하며 소련의 장기 지배에 맞서는 이들의 저항정신에서 외세에 굴복하지 않는 투지를 배우고 귀국했다.
1979년 대통령 사다트가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자 이집트 내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분노가 끓어올랐고, 급기야 사다트는 이들에 의해 암살됐다. 알 자와히리도 용의자 중 하나로 잡혀 지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직접 암살계획에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1984년 풀려났다. 수배 중인 동료의 은신처를 불고 그 대가로 석방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투옥 중에도 알 자와히리는 영어에 능통한 덕에 수감된 조직 동료들의 권익을 외부, 특히 서방 언론에 대변하는 역할을 자처하며 유명해졌다.
이후 알 자와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국가를 여행하다 빈 라덴을 만나게 됐고, 본격적인 테러 전선에 뛰어들어 지금에 이르렀다. 1998년 EIJ와 알 카에다가 조직을 합치면서 알 자와히리의 입지는 높아졌고, 알 카에다 이름으로 자행되는 각종 테러의 기획을 도맡아 설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11 직후 빈 라덴과 알 자와히리를 제압하려는 미국의 공중 공격이 아프가니스탄 일대 이들의 은신처를 강타하는 와중에 알 자와히리는 아내와 세 아이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최근 알 자와히리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 중 하나는 알 카에다가 그의 지휘 아래 화생방(CBR) 무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첩보 때문이다. 첩보 자체의 신빙성에 논란은 있지만, 일단 독가스, 세균, 방사능 등을 이용한 무기가 테러에 사용된다면 그 피해규모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는데다가 사전 포착도 쉽지 않아 미국은 바짝 긴장한 채 알 자와히리의 소재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빈 라덴과 마찬가지로 알 자와히리도 독자적으로 거점을 옮기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세계 최고라는 미 정보 당국을 겸연쩍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