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시위를 유혈진압하자 미국은 이에 항의해 유럽 등 서방국가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중국에 외교 제재를 가한 것으로 그동안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시 미국의 조지 H.W. 부시(Bush) 대통령이 특사를 파견하는 등 미 정부가 중국 정부와 ‘내통’하고 있었던 것으로 폭로됐다.
우젠민(吳建民) 중국 외교학원 원장은 18일 출판한 ‘외교안례(案例·實例 또는 케이스 스터디란 뜻)’에서 당시 부시 대통령이 유혈진압 17일 뒤인 6월 21일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으나 의회와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에 제재 조치를 취하는 것이니 양해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공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브렌트 스코크로프트(Scowcroft) 당시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을 중국에 특사로 보내겠다는 뜻을 전했다.
우 원장의 폭로에 따르면, 부시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연락을 받은 덩샤오핑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은 다음날 답장을 보내 미 특사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지금 중·미 관계는 위험에 처해있다… 그동안 쌓아온 관계가 무너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미국이 천안문 사태에도 불구하고 중·미 관계의 악화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덩샤오핑은 7월 2일 스코크로프트가 주중 미대사관에도 알리지 않은 채 화물기를 타고 비밀리에 베이징에 도착하자 “7개국이 아니라 70개국이 우리 중국에 제재를 가해도 조금도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를 쳤으며, “우리는 이미 한국전쟁에서 제공권을 모두 빼앗기고도 미국과 당당하게 싸운 기개와 용기를 갖고 있는 나라인데 뭐가 두렵겠느냐”고 미 특사를 몰아붙였다.
당시 리펑(李鵬) 총리와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이 배석한 가운데 미 특사를 만난 덩샤오핑은 스코크로프트가 “건강은 어떠시냐”고 인사를 하자 “내가 85세의 늙은이이긴 하지만 얼마 전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내가 중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 것은 명백한 헛소문”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중국외교부 대변인 출신으로 주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우젠민 원장의 이 같은 폭로는 천안문 사태 당시 미국이 국제사회의 대중(對中) 제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실제로는 사실과 다르며, 부시는 덩샤오핑에게 오히려 저자세를 보였다고 증언한 것이다. 미국은 그해 12월에도 베이징에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음을 다짐했다고 우 원장은 밝혔다.
한국은 당시 대중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민간 경제교류를 계속하다가 1992년 한중 수교로 연결시키는 정책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