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찾아온 소중한 사랑이다. 결혼해서 2세를 갖고 싶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딸이자 (재)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이사장인 박근령씨(54)가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나이에…"라고 쑥스러워하면서도 결혼과 2세에 대한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교수님과) 노력해 보자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중년의 박씨는 14세 연하인 신동욱씨(40ㆍ백석문화대 광고마케팅학부 겸임교수)와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 가을 지인의 소개로 만났고, 지난해 2월 초 '산상 약혼식'을 올렸다. 대통령의 딸과 평범한 남자의 사랑, 14세차의 연상연하 중년 커플…. 두 사람의 사랑은 여러 면에서 관심을 모은다. 원래 올초 결혼할 계획이었지만, 신씨가 4월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어서 결혼식은 선거 이후로 늦췄다.

'산상 약혼식' 1년이 돼 가는 두 사람을 지난 화요일(15일) 만났다. 장소는 서울 망우동 우림시장 입구에 위치한 상가복합건물 옥탑방. 5평 남짓한 컨테이너박스는 썰렁했다. 책상 2대와 컴퓨터, 팩시밀리와 냉장고 등 허름한 비품이 있었다. 전기스토브 1대로 힘겹게 추위와 맞서고 있었다. 박씨는 동생 지만씨가 마련해준 성북동 아파트에 살고 있다. 요즘엔 신씨의 숙소 겸 선거사무실인 이곳에 수시로 들러 격려하고 있다.

두 사람은 "여느 젊은 커플과 다름없이 데이트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뚜벅이족'에 가깝다. 늦은 시간 한강 둔치를 산책하거나,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기도 한다. 거리의 점쟁이에게 사주를 보기도 했다.

중년의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박근령(왼쪽)-신동욱씨가 데이트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웃고 있다.

단골 데이트 코스는 청계천. 광화문에서 신당동 사저(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서울에 처음 마련한 집)까지 걷는다. 신씨는 "지난해 첫눈이 내리는 날 청계천에서 첫 키스를 했다"고 털어놨다. 광화문~한양대~반포대교를 4시간 이상 걸은 적도 있다. 당시 포장마차에서 오뎅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면서 '막걸리파'였던 아버지를 추억하기도 했다.

호칭은 대개 이사장님, 교수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한다. 가끔 "자기씨", "근령씨"라고 부른다. 노래방도 한달에 두세 번 가는데, 서울대 음대(작곡과) 출신인 박씨의 노래실력은 수준급이다.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가 둘이 함께 부르는 단골 레퍼토리. 신씨의 싸이월드에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가 오프닝곡으로 입력돼 있다. 박씨의 휴대폰 컬러링도 같은 곡이다.

둘이 짧은 시간에 가까워진 건 등산이 계기가 됐다. 등산 애호가인 신씨를 따라 산을 타기 시작했다. 요즘도 한달에 한두 번씩은 꼭 찾는다.

프러포즈는 누가 먼저 했을까. 박씨는 "아무래도 연상인 내가 먼저 했겠죠"라고 선수를 쳤다. "내가 누구를 잘 챙겨주는 편이고 또 모성애가 강하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신씨가 "내가 먼저 했을 걸요"라고 즉각 반박했다. 결국 "둘이 동시에 했다"고 합의했다.

백록담의 현무암 돌멩이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신씨는 2006년 12월 동료교수들과 한라산 정상에 올랐을 때 한 쌍의 돌을 가져와 편지봉투에 곱게 싸서 선물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무려 3주 동안 박씨에게서 연락이 없어 애를 태웠다. "어느 날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영정을 모신 신당동 사저로 오라고 하시더군요. 참배하고나서 보니, 상에 제가 선물한 돌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어요. 너무 기뻤죠." 그 이후 신씨가 적극적으로 대시했다.

두 사람은 이혼 경험이 있다. 박씨는 82년 풍산금속 창업주의 아들과 결혼했으나 6개월만에 이혼했다. 이후 줄곧 독신으로 지내왔다. 신씨도 2004년 파경의 아픔을 겪었다. 이 얘기가 나오자 신씨는 조심스러워했다. "혹시 옛 사람의 명예에 누가 될까봐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씨는 "악성 루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수님과 전처, 아이들 문제를 상의하면서 정이 깊어졌다"고 감쌌다.

약혼식을 서두른 건 박씨의 유명세 때문이었다. 스캔들로 번질까봐 '공식적으로' 교제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약혼하고 나면 손 잡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14세의 나이차는 전혀 문제가 안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오히려 공통점이 많다. 특히 검소한 점이 닮았다. 박씨는 일주일 전에 이마트 기획상품전에서 '거금' 1만5000원짜리 바지를 사서 선물했다. 선거를 앞둔 신씨가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신씨는 고속터미널에서 산 9800원짜리 캐주얼화를 건넸다.

'혹시 선거용 쇼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적극 반박했다. 박씨는 "교수님은 허풍이 없다. 1000원 밖에 없는데 1만원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선거비용은 후원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고 옹호했다.

박씨의 정성은 신씨의 식성까지 바꿨다. "육식주의자였던 교수님의 식성이 나를 따라 채식으로 바뀐 게 만족스럽다"고 웃었다. 실제로 박씨는 요리를 잘 해준다. 주요 메뉴는 시금치된장국, 파래김, 장조림, 계란찜 등. 그러나 요리 솜씨에 대해서는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국적 불명의 퓨전요리"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요리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애틋한 마음을 나타냈다.

신씨의 충선 출마에 대해서 언니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상의한 적은 없다. 박씨는 "(대표님이) 걱정하실까봐 말을 안했다. 정치가 워낙 어렵고 험난해서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도 오랫동안 정치를 했던 사람이다. 젊은 사람이 도전의식을 갖고 뭔가 해보겠다는데 믿어주시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나타냈다. 신씨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디지털자문위원장, 이명박 대통령 후보 정책특보 등을 지냈다.

신씨는 '혹시 박씨의 후광을 이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사장님이 대통령의 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홀로서기를 통해 새 길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싸이월드에 이사장님 관련 자료가 단 한 개도 없다"고 강조했다.

'제2의 인생'을 열고 있는 박씨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랑을 만났다. 두 번 헤어질 수는 없다. 예쁘게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