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개선이라는 접근법을 통해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와 개방을 이끌어내는, 이른바 '아시아판 헬싱키 프로세스'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제8회 북한 인권·난민 국제회의'가 22일 영국 런던의 채텀하우스에서 열렸다.
한국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고려대 국제대학원, 영국의 채텀하우스, 노르웨이의 라프토인권재단이 공동 주최하고,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과 노르웨이 외교부와 표현의자유재단, 조선일보가 후원한 '북한 인권·난민 국제회의'가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원 '채텀하우스'에서 열린 것은 뜻 깊다. '채텀하우스'는 사전에 공개된 발표 자료를 제외하고는, 모든 토론 내용을 익명에 부쳐 자유로운 토론을 이끌어내는 '채텀하우스 룰'로 유명하다.
그 덕에 셸 망네 보네비크(Bon devik) 전(前) 노르웨이 총리(오슬로평화인권센터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한 것을 비롯, 2001년 초대 평양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제임스 호어(Hoare) 박사, 제임스 굿비(Good by) 전 헬싱키 프로세스 미국 대표,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의 자문위원을 지낸 얀 비니치(Winiec ki) 박사 등 외교관과 관료 출신들도 참가해 '민감한' 북한 이슈에 대해 깊이 있고 다양한 시각을 개진했다. 북한 대사관에도 초청장을 보냈지만 북한측이 참석하지 않았다.
그동안 '북한 인권·난민 회의'는 북한 인권 침해의 심각성을 세계 각국에 알려 반향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 8차 회의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라는 방향 전환으로 주목받았다. 한 참석자는 "북한이 폐쇄된 사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은 구멍은 있다"고 표현했다. 그런 작은 변화들도 긍정적으로 조망하면서 어떻게 하면 변화를 가속화할지 집중 논의한 자리였다.
미국에서 온 한 전문가는 "북한은 IMF(국제통화기금)나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경제를 살릴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실권을 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핵심이라는 사실도 이제는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영국 관료는 "북한을 나쁘다고 비판만 해서는 북한의 변화를 끌어낼 수는 없고, 세계의 입장을 북한에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영국의 경우,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전되지 못하다가 영국측에서 '우리도 경찰이 인권 침해를 한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하니 북한이 태도를 조금씩 바꾸었고, 그 덕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돌파구를 마련한 경험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회의에는 탈북자들도 참석해 체험을 이야기했다. 북한 평양국립교향악단 출신의 피아니스트 김철웅씨는 "당의 선전 도구로만 이용되던 북한 예술단체들도 독립 채산제를 실시하면서 유료 공연을 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성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변화가 일고 있다"고 전했다. 또 "요즘 평양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누가 한국의 최신 드라마를 보고 줄거리를 얘기하느냐에 따라 인기도가 정해질 정도"라면서 "다양한 문화적 자극으로 북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인민군 대위 출신으로 지난 2006년 탈북한 박명호(42)씨는 "10년 넘게 한국과 전 세계에서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을 돕기 위해 많은 지원을 했지만 주민들 생활은 거의 나아진 게 없다"면서 "쌀을 보내도 가장 먼저 군대로 들어가도록 제도화되어 있다"고 폭로했다. 박씨는 "북한 주민들은 북한 체제가 붕괴되길 바라며 눈물 겨운 싸움을 벌이는데, 한국 정부가 아무 생각 없이 북한 당국에 쌀 갖다 주면서 북한 주민들을 돕는다고 선전하는 걸 보면서 도저히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진행된 제3회의 시간에는 인권 문제를 안보 문제에 연계해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던 '헬싱키 프로세스'를 북한에도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특히 중국의 리더십 등 '아시아판 헬싱키 프로세스'에는 강대국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허만호 경북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나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은 북한을 무조건 지원해서 경제가 호전되면 인권 문제도 절로 해결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으로 볼 때 경제 위기를 극복해도 북한 인권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낙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