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부터 여러분이 원하는 걸 시작하겠습니다."

나훈아가 갑자기 양복 윗옷을 벗어 던지고 테이블 위로 올라 섰다. 허리띠와 바지 단추를 풀고 지퍼를 반쯤 내렸다. 좌중에서 "어머, 어머"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오른손을 좍 펴 보였다. "제가 (바지를)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

한 마리 '백호(白虎)' 같은 나훈아의 서슬 퍼런 포효에 500여명의 취재진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온갖 괴소문에 시달려온 가수 나훈아가 입을 열었다. 나훈아는 25일 오전 11시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중에 떠도는 루머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엉뚱한 얘기들"이라며 55분간 쉬지 않고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나훈아는 이날 오전 10시58분, 취재진을 비롯해 600여명이 참석한 회견장에 나타났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뒤로 짧게 묶고 검정 양복을 입은 나훈아는 잠시 미소를 짓다가 곧장 굳은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 날씨가 제 속마음만큼 시리고 차가웠습니다. 저는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한 게 없기 때문에 해명할 게 없습니다. 확실치 않은 보도를 한 언론에서 해명을 해야 합니다."

나훈아는 먼저 '작년 3월 세종문화회관 공연 취소 후 잠적'에 대해 말했다. "나는 세종문화회관이 (공연장으로) 잡혀 있는 걸 몰랐습니다. 재작년에 '내년 공연은 잡지 말라'고 미리 얘기했기 때문에 잡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가수 나훈아가 25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단상에 올라가 바지 지퍼를 내린 뒤“5분간 보여드리겠다”고 말해, 회견 참석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세종문화회관과 당시 대관 계약자인 기획사 '플랜위즈'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세종문화회관측은 이날 "2007년 3월 15일부터 4일간을 대관키로 '플랜위즈'와 계약했으나 취소됐다"고 말했다. 플랜위즈 노현창 대표도 "나훈아씨측과 상의 없이 2006년 10월 대관 계약을 했으나 그 해 말 '내년엔 일절 공연을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듬해 1월 취소했다"고 말했다.

나훈아는 이어 "4년 전 연말 공연을 마치고 앞으로 공연을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이 처음 생겼다"며 "작년 1년은 '꿈'을 채우러 여행을 떠나고 외국에서 공부를 하며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전북 남원에서 경상도까지, 강원 삼척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여행했고 14개국을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얼굴이 알려져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밤새 숙제하면서 오랜 만에 꿈을 느꼈고, 프레젠테이션(발표)이 있을 때는 사흘간 잠 못 자고 준비해서 교수로부터 '어얼리 버드(early bird·일찍 일어나는 새)'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말했다.

'다른 연예인의 아내를 가로챘다'는 소문을 반박할 땐 언성이 높아졌다. "실제는 물론이고 꿈에라도 남의 마누라를 탐하고 가정을 파괴할 마음이 눈곱만큼만 있었다 해도 나는 개××입니다."

나훈아는 인터넷에 떠돈 '야쿠자의 연인을 건드려 야쿠자로부터 신체 일부를 훼손당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제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 'Seeing is believing(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었다"며 윗옷을 벗어 던지더니 갑자기 테이블에 올라갔다. 그가 바지 지퍼를 내리고 "봐야 믿겠느냐"고 묻자, 팬들이 "나훈아님 믿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옷을 고쳐 입은 그는 자리에 앉아 "'밑'에가 잘렸다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나온 이유가 바로 이제 얘기하는 겁니다"라며 '야쿠자의 여인'으로 소문이 돌았던 배우 김혜수·김선아에 대해서 말했다.

나훈아는 "의지가 약하고 견디기 어려운 성격이라면 두 여인은 자살까지 갔을 것"이라며 "여러분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김혜수 김선아, 우리 후배 처자들 바로잡아 주십시오.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도 함께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바로잡아 달라"는 말을 6번이나 반복했고,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인사한 뒤 벌떡 일어나 회견장을 나갔다.

이날 나훈아 기자회견은 케이블TV 뉴스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나훈아는 55분간 한 번도 막힘 없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고,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훈아는 회견에서 "여러분이 펜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격앙된 어조로 여러 번 반복, 소문의 진원지인 일부 언론을 비판했다. 그러나 나훈아 본인은 물론, 기획사 관계자조차 연락 두절 상태였던 것을 두고 "너무 늦게 대응해 소문이 증폭되는 것을 자초한 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나훈아 괴담'이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것은 우리 사회 병리의 일단을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안동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연예저널리즘과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집단 관음증(觀淫症)의 단면"이라며 "걸러지지 않은 블로그와 그 댓글로 얼룩진 인터넷이 이런 루머를 확산시키고 증폭시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