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 17세기경 수립되었다가 서기전 11세기경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멸망한 은(殷)나라의 시조 설(契)은 은설(殷契)로도 불린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은(殷) 본기에서 이 사화(史話)를 전하는데, "은나라 시조 설의 어머니 간적(簡狄)은 유융씨(有女戎氏)의 딸로서 제곡의 두 번째 비(妃)였다.

세 사람이 목욕하러 갔을 때 검은 새〔玄鳥〕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삼켰더니 임신하여 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은나라도 난생(卵生) 건국설화임을 말해준다. 은나라의 실재를 부인하던 중국학자들은 하남성(河南省) 은허(殷墟)에서 대량의 갑골문이 출토되자 은의 건국민족에 대해 탐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이징대 대리총장이었다가 타이완(臺灣)으로 가서 타이완대 총장이 되는 부사년(傅斯年)은 1920년대 은허 발굴을 주도했는데, 그는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에서 은설(殷契) 사화를 실으며 '이러한 난생 설화는 동북민족과 회이(淮夷)의 신화'라면서 '논형(論衡)'에 나오는 탁리국( 離國=부여) 시조 동명과 '위서(魏書)'의 고구려 시조 주몽, 그리고 고구려 '호태왕비'의 시조 추모왕의 난생설화를 원문대로 실어 은과 부여·고구려의 시조사화가 같음을 보여주었다.

청(淸)나라 강희제(康熙帝)의 명으로 아계(阿桂) 등이 1778년 완성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도 마찬가지다. "장백산(백두산) 동쪽에 포고리산이 있고 그 아래 포륵호리(布勒瑚�)라는 연못이 있는데 서로 전하기를 천녀(天女)가 목욕하러 왔다가 신작(神鵲:까치)이 입에 문 붉은 열매(朱果)를 둘째의 옷에 놓았는데, 둘째가 입에 물자 홀연히 뱃 속으로 들어와 한 남아를 낳았다" 는 것이다. 이 설화는 '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에도 실려 있다.

근래 중국에서 출간된 '사기해독(史記解讀)'이나 갑골문 연구자인 맹세개(孟世凱)가 출간한 '하상사화(夏商史話)'는 은나라를 이인(夷人), 또는 동이족의 가지〔分支〕라고 쓰고 있다. 동북공정의 뿌리를 무너뜨릴 '은=동이족 건국설'이 다름 아닌 중국사 연구에 의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