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일명 '김재호 슬라이딩 사건'이 프로야구계의 최대 이슈였다. 지난 19일 잠실 두산-SK전 도중 두산 김재호가 2루 슬라이딩을 들어가면서 SK 나주환이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촉발된 두산과 SK의 '감정싸움'에 23일 김재박 LG 감독이 가세하면서 확전 양상을 띄었다.
김재박 감독은 'SK가 지난 해부터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한다. 일본인 코치가 가르치는 것 같다'는 요지의 발언으로 SK의 거센 항의를 샀다. 다행히 김 감독이 '와전된 것 같다'고 해명하고 SK가 받아들이면서 '김재호 2루 슬라이딩 사건'은 일단락됐다.
김재박 감독은 왜 ‘남의 전쟁’에 개입했을까. 김 감독은 “기자들이 물어보길래 대답했을 뿐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지적한 것을 보면 평소 갖고 있던 SK 내야진의 플레이에 대한 생각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김재박(54) 감독과 김성근(66) 감독은 '해묵은 앙금'이 있다. 물론 본인들이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두 감독 모두 잊지못할 추억(?)이 있다. 시기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재박 감독이 신생팀 현대 유니콘스 창단 감독으로 임명돼 프로 사령탑으로 데뷔한 시즌이었다.
김재박 감독은 초보 사령탑이었지만 신인 강타자인 박재홍(현 SK)의 ‘괴물타격’ 등에 힘입어 기대 이상으로 잘나갔다. 시즌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태풍의 눈’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이 때 딴죽이 들어왔다.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사령탑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현대 주포인 박재홍의 타격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박재홍이 타격 후 왼발이 배터박스를 벗어난다며 ‘부정타격’이라고 주장했다. 배터박스 앞부분을 활용하는 박재홍은 타격 후 왼발이 배터박스를 걸치거나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문제삼은 것이다.
논란은 꽤 오랜기간 프로야구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하지만 박재홍은 잠시 의기소침했을 뿐 거침없는 타격으로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을 창설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도 김성근 감독의 일격에 주춤했으나 그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초반 강세를 유지했다.
그 때 박재홍의 타격 자세는 사실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당시 심판위원장으로 곤욕을 치렀던 김광철씨는 지금도 “박재홍의 타격 자세는 문제가 없었다. 아예 처음부터 왼발이 배터박스를 벗어나 있었다면 문제이지만 타격 후 자연스런 동작으로 연결된 점은 문제가 없다. 규정에도 자연스런 동작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김재박 감독도 "원래 타격은 앞으로 갈수록 불리하다. 그런 점에서 박재홍의 타격은 스스로 불리함을 찾아갔지만 워낙 좋은 배트 스피드로 이를 커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이 불쑥 박재홍의 타격 자세를 문제삼은 것은 잘나가던 현대의 분위기를 가라앉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김성근과 박재홍은 한 팀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으니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두 팀의 감정대립은 그 해 포스트시즌에도 이어졌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현대 선수단이 부글부글 끓었던 일이다. 이번에는 마운드에서 사단이 났다. 현대와 쌍방울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나 전주구장에서 경기를 치를 때였다. 현대 선수단은 전주구장에 도착해서는 깜짝 놀랬다. 전주구장 마운드가 평지처럼 깎여져 있었던 것이다.
마운드가 갑자기 낮아진 것에 현대는 문제삼지 않았지만 당황했다. 현대는 주로 정통파 스타일 투수들로 낮은 마운드에 적응하기가 힘든 반면 쌍방울은 성영재, 김기덕, 김현욱 등 언더핸드 투수들이 주류를 이뤄 낮은 마운드에 유리했다.
한 심판위원은 “지금은 마운드 높이를 10인치로 통일했지만 당시에는 구장마다 조금씩 달랐다. 자기팀에 어떤 스타일의 투수들이 많은 가에 따라 마운드 높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어떤 때는 심판들이 자를 갖고 다니며 재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재홍 타격 자세나 마운드 높이는 결국 규정을 벗어나 크게 문제삼을 소지가 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팀간 ‘기싸움’의 일환으로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야구계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최근 벌어진 3개팀간 ‘감정싸움’도 신경전의 일환으로 풀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은 김성근 감독이나 김재박 감독 모두 당시의 일들을 묻어두고 사안에 따라 동지와 적이 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시즌 개막직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김경문(50) 두산 감독이 SK 선수들을 데려가서 부상관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비난하면서 '김재박 감독은 2006년 아시안 게임 감독 때 감사하다는 전화도 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세밀한 야구를 추구하는 베테랑 김성근 감독과 김재박 감독은 때로는 각을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칭찬을 하며 프로야구계의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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