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경기 연속 스틸 기록을 달성한 뒤 팬들의 성원에 답하는 크리스 폴. AP 뉴시스

농구에서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 스틸(steal·상대 선수의 공을 가로채는 것)이다. 크리스 폴(Paul·뉴올리언스 호네츠)은 전 세계에서 상대의 공을 가장 잘 훔쳐내는 농구 선수로 꼽힌다. 2005년 NBA(미 프로농구) 입단 후 256경기에서 600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한 경기당 평균 2.3개. NBA 역대 통산 최다 스틸 기록(3265개, 경기당 2.2개)을 보유한 존 스탁턴을 능가할 가장 강력한 후보로 평가된다.

폴은 지난 18일(한국시각) 샌안토니오 스퍼스 전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2쿼터 3분 43초를 남기고 토니 파커의 패스를 가로채며 NBA 역대 최다인 106경기 연속 스틸 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앨빈 로버트슨이 1986년 작성한 105경기였다.

폴은 NBA를 대표하는 차세대 포인트가드다. 2005년 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지명된 폴은 첫 시즌 평균 16.1점, 7.8어시스트로 신인상을 받으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지난 시즌엔 팀을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까지 끌어올렸다. 1m83의 크지 않은 키지만 폭발적인 득점력에 정확한 패스 능력까지 갖췄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폴의 이름이 미국 전역에 알려진 것은 고3 졸업반 시절 외할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사연 덕분이었다. 폴의 외할아버지 나타니엘 존스는 어린 시절 폴에게 농구를 가르친 스승. 폴은 자신이 원하던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에서 뛰게 되자 가장 먼저 외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 정도로 그를 따랐다. 하지만 얄궂게도 폴의 대학 입학이 결정된 다음 날 외할아버지는 10대 강도들에 의해 숨을 거뒀다.

장례식을 치른 뒤 다음 경기에서 폴은 61득점을 올리겠다고 결심했다. 사망 당시 외할아버지의 나이가 61세였기 때문. 폴은 눈물을 참고 코트를 휘저었고, 종료 2분 전 61득점에 성공했다. 추가 자유투를 얻어내 자유투 라인에 섰지만 고의로 실패한 폴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우는 장면은 미국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외할아버지를 하늘로 떠나 보낸 뒤 농구에 더욱 집중한 폴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절망했던 뉴올리언스에 희망을 주는 스타로 성장했다. 지난 9월 자선 볼링 대회를 여는 등 미국 청소년들에게 '롤 모델'의 역할을 하고 있는 폴은 뉴올리언스의 창단 후 첫 우승을 노린다. 평균 어시스트 11.9개로 리그 1위. 뉴올리언스는 15승7패로 LA레이커스(21승3패)에 이어 서부 콘퍼런스 2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