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소속 여자 부사관이 세 명의 동료 부사관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뒤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본지 12월 18일자 보도)

2004년 6월 모 사령부 L모 소령(40)은 부대 행사를 마치고 부하들과 찜질방에 갔다가 잠든 여군 부사관의 몸을 만졌다. 조사 중 그가 자기 숙소로 다른 여자 부사관을 불러 강제 추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구속됐다.

2005년 2월 동남아시아 지진 해일 피해국 지원에 나섰던 해군상륙함(LST) 함장 K모 중령은 함장실에서 위관급 여장교의 어깨를 두드리며 "첫사랑을 닮았다. 밖에 나가서 만나자"며 성희롱했다. 함정이라는 공간에서 여군 장교가 받은 위협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대한민국 여군은 장교와 부사관을 포함 4900여명이다. 사진은 여군들이 구보하고 있는 모습.

군대 내 성폭력 실태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육·해·공군 본부에서 군(軍) 관련 민사 사건을 담당하는 특별 참모 부서인 법무감실이 2004년 발간한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한 처벌 사례에서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는 모 사단 중대장(대위)이 하사 숙소에서 간부 및 군인 가족을 부부동반으로 불러 회식을 하던 중 촛불을 켜놓은 채 춤을 추면서 중위 부인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고 중위 부인의 손을 당겨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한 사건이 등장한다.

또 다른 사단의 대대장 K모 중령은 부하 여군 장교를 관사에 불러 "친한 오빠, 동생으로 지내자"면서 등 뒤에서 껴안고 이를 거부하는 여군 장교를 껴안고 강제로 키스하는 등 자기 지위를 이용해 강제 성적 접촉을 시도한 사건도 있었다. 중대장과 대대장은 징계위원회에서 보직해임됐거나 현역복무 부적합자로 의결돼 전역 조치됐다.

폐쇄적이고 계급 중심인 군 특성상 군내에서 발생한 성폭행이나 성추행 등이 외부에 공개되는 경우가 드물다. 군 관계자는 "여군 피해자는 대개 직업 군인이라 군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피해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피해자가 제보하거나 고발하기 전에는 알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해군에서 발생한 여자 부사관 성폭행 수준은 아니더라도 현역 여군 장교와 부사관들이 당하는 성폭력 수준이 상당하다는 게 여군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상급자들이 계급이 낮은 여성 부사관들을 상대로 한 성폭력 발생 빈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신체 접촉은 물론 임신, 생리 등과 관련된 성희롱도 포함된다. 부사관은 하사로 임관한 뒤 4년 의무 복무 기간 중 상당 부분을 영내 숙소에서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당직 사령이나 당직 사관이 순찰이나 점호를 핑계로 숙소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에 상관이 불쑥 숙소에 들어왔어요. 내무검사를 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상관은 피자를 내밀면서 함께 먹자고 했어요. 거절하면 무안할까 봐 감사하다고 말한 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려 하자 상관이 뒤에서 나를 껴안았어요." (현역 여군)

성폭력 전문가들은 최근 수년 동안 여군 증가와 더불어 군대 내 성폭력 건수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1997년 공군사관학교를 시작으로 육사와 해사가 차례로 여성생도를 받아들이면서 군에 대한 여성의 진출도 급격히 늘었다.

우리나라 여군은 전군의 2.7%인 4900여명이다. 이 중 장교는 2700여명, 부사관은 2200여명이다. 여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군내 환경 개선은 더디게 진행됐다. 현직 여성 장교는 "군내 샤워실과 화장실도 대부분 남성 위주여서 여군은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여군이 전방부대와 오지(奧地) 근무에 투입되면서 성폭력 사건 발생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2001년부터 금녀(禁女)의 공간이었던 해군 함정에서 여군이 근무를 시작한 뒤 여군에 대한 성폭력 사건도 잠재돼 있다고 주장한다. 2005년 함정에서 발생한 함장의 성희롱 사건이 처음 공개됐지만 이와 유사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개연성이 많다는 것이다.

해군의 경우 연근해 작전이나 훈련을 나가면 장기간 함정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군인들이 성욕을 억제하는 것이 힘든 문제다. 익명을 요구한 예비역 제독은 "함장 재직 당시 훈련 나가면 아예 콩을 한 자루 싣고 간다. 성욕이 생길 때마다 골프채로 콩을 쳐가면서 이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여성 장교는 "군이 남성 중심 사회이고 근무지 역시 고립적인 공간이어서 여군은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여성 부사관들은 어리고 계급이 낮아 여성 장교보다 상대적으로 피해를 더 당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