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는 유달리 대형 사건이 많았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있었고 '한국판 OJ 심슨 사건'이라 불린 은평구 치과의사 모녀(母女)살인 사건도 그해 일어났다.
1995년 11월 20일 새벽 서울 은평구 S호텔 한라 스위트 룸 57호에서 2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인기그룹 '듀스'의 전(前) 멤버 김성재(金成宰·당시 24세)씨였다. 경찰은 그가 전날 SBS-TV '생방송 한밤의 인기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애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오후 10시쯤 호텔 방으로 들어와 잠을 잤다고 발표했다.
S호텔 스위트 룸 57호는 45평으로 침실 3개, 거실, 화장실 2개가 있었고 출입문이 2개 있었다. 당시 방에는 흑인 남녀 백댄서 2명, 한국인 백댄서 4명, 매니저와 숨진 김씨의 동료가 있었다. 숨진 김씨의 애인은 새벽 3시40분쯤 호텔을 나갔다.
경찰이 처음으로 추정한 김성재의 사인(死因)은 과로사(過勞死)와 심장마비였다. 그러나 이 추정은 금세 늘어난다. 김씨의 오른쪽 팔뚝에서 28군데의 주삿바늘 자국이 발견되고 그의 백댄서 2명이 사건 다음날 급히 미국으로 떠나면서 과로사, 심장마비 외에 흥분제 복용, 희귀약물복용, 마약(痲藥) 복용 등의 추정이 추가된 것이다.
서울지검 서부지청이 김씨 사망 사건을 전면 재수사한 것은 사건 발생 15일 뒤인 12월 5일이다. 오른손잡이인 그가 자기 오른쪽 팔뚝에 주사를 놓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검찰은 또 김광훈 당시 국과수 법의학검시관의 말을 빌려 "숨진 김씨의 몸에서 마약류인 틸레타민과 수면제인 졸라제팜 성분이 치사량에 이를 만큼 상당량 검출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숨진 김씨의 매니저(당시 33세)와 애인(당시 25세)에 대해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숨진 김씨의 몸에서 검출된 틸레타민과 졸라제팜 성분은 동물성 흥분제인 졸레틸, 테라졸이라는 약품에 포함돼있다.
경찰이 애인을 긴급구속한 것은 12월 8일이었다. 경찰은 "그가 호텔에서 동료들이 모두 잠자러 각자의 방에 들어간 뒤 동물용 수면제를 잠든 김씨의 팔에 집중적으로 주사한 혐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범행동기에 대해 경찰은 "숨진 김씨가 1995년 11월 15일 미국에서 귀국하기 전, 전화로 애인에게 결별을 통보했다"며 "이에 애인이 범행을 결심하고 서초구 반포본동의 한 동물병원에서 범행에 사용된 동물용 수면제와 희석액, 황산 마그네슘, 주사기 2개를 구입했으며 그 뒤 그 동물병원을 찾아가 '약품 구입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애인은 "동물용 수면제는 집에서 길러온 애견(愛犬)을 안락사 시키기 위해 샀지만 바로 다음날 아파트 쓰레기 통에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호텔 방을 나올 때 김씨는 아무 이상 없이 잠을 자고 있었고 팔뚝에 주삿바늘 자국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애인에게 살인죄를 적용,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숨진 김씨와 애인이 원만한 관계여서 살해동기가 없었고 애인이 구입한 동물용 수면제의 양이 절대 치사량에 미달되며 사망 시각 추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새 대통령 취임식 날인 1998년 2월 25일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후 진범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이 사건은 미제(未濟)로 남게 됐으나 지난해 안재환, 최진실씨 자살 사건 때 일부 언론이 '김씨가 자살했다'고 잘못된 보도를 함으로써 14년 만에 다시 불거진 것이다.
숨진 김씨의 어머니 육영애씨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아들의 죽음에 아직도 유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잘못된 보도가 나와 행동에 나섰다"고 했다. 숨진 김씨의 동생은 형을 따라 가수와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으나 2005년 전신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육씨는 한때 용의자였던 애인에 대해 "지금도 성재의 팬들이 '그가 성형을 했다' '개명(改名)했다' '누구와 결혼했다' '어느 대학에서 대학원을 나왔다' '어디서 개업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온다"며 "그 사실을 일부러 확인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