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급 미모’로 통하는 그에게 ‘하숙범’의 과거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있을까?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 F4 중 하나인 김범(20). 2년 전만 해도 친구 집에서 눈칫밥 먹어가며 더부살이를 하던 순한 고등학생 범이(‘거침없이 하이킥’)는 이제 숱한 여자의 혼을 빼놓고도 하루 이상은 만나지 못하는 ‘야속한 꽃미남’ 소이정으로 거듭났다.
“이정이가 나쁜 바람둥이는 아니다”라며 극구 옹호하던 그는 “단 하루를 만나도 상대방에게는 인생 최고의 행복감을 선사해주니 얼마나 좋으냐?”고 반문했다. 화면 속 자신을 보고 “여자라면 충분히 반할 수 있는 인물인 것 같다.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라 할 정도니 상당한 자신감이다.
그는 또 소이정을 이렇게 변호했다. “아픈 첫 사랑 때문에 지울 수 없는 그늘이 생긴 인물이죠. 첫사랑을 추억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만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를 넘기지 못하는 겁니다. 곧 이정이가 왜 ‘플레이 보이’가 됐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방송될 겁니다.”
‘꽃보다 남자’가 각종 자극적 설정으로 ‘막장 드라마’ 논란을 빚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원작이 만화다 보니까 조금 비현실적일 수 있다”며 “우리는 정극이 아니라 판타지 로맨스 라는 독특한 장르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최근 당한 교통사고 이야기를 꺼내니 씩 웃는다. 당시 오른쪽 발을 다친 그는 봉합 수술을 받은 상태. 그는 “7㎝쯤 찢어졌는데 인대, 신경 쪽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도 받았다”며 “허리와 목 부위는 입원했을 때 말끔하게 치료를 마쳤다”고 했다. “팬 분들이 걱정이 많았던 것 같아요. 죄송할 따름이죠. 무엇보다 부모님들께 심려 끼쳐드린 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꽃보다 남자’ 기획 당시 가장 높은 관심을 받았던 건, 아이돌 그룹 SS501의 김현중, 그리고 김범이었다. 그는 이미 ‘거침없이 하이킥’, ‘에덴의 동쪽’을 통해 신진 스타로 주목 받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소한 얼굴 이민호(구준표)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고, 대세를 잡았다. 김범 또한 그런 현실을 또렷이 인식하고 있었다.
“많은 분들이 그래요. ‘생각보다 비중이 작다’고. 뭐 그렇게 말씀하시면 솔직히 별로 드릴 말씀은 없어요. 그런데 저는 큰 역할, 작은 역할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별로 없어요. 카메라가 제 앞에서 돌건 안 돌건, 제가 연기하는 소이정은 ‘꽃보다 남자’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이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거죠. 일상에서도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평등하듯이 전 드라마 배역도 마찬가지라고 믿습니다.” 그는 이민호에 대해 “같은 작품을 하는 동료이자 친한 형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기분이 좋아진다”며 “제가 연기는 좀 빨리 시작했지만 민호 형한테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꽃보다 남자’와 ‘에덴의 동쪽’은 같은 시간대에 맞붙는 경쟁작. 김범은 주인공 이동철(송승헌) 아역을 맡아 ‘에덴의 동쪽’ 초반 인기에 불을 붙였으니 얄궂은 운명이다. 단 4회 출연했지만,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분노,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끌어안은 채, 질주하는 그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그는 “ ‘거침없이 하이킥’의 귀여운 고등학생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다”면서도 “막상 휴대폰도 안 터지고 컴퓨터도 없는 오지에서 촬영에 들어가니까 머리가 맑아지고 쓸데없는 고민이 사라졌다”고 했다.
김범은 '꽃보다 남자' 촬영 초반 대구 계명대에서 '에덴의 동쪽' 제작진을 만난 적도 있다. 공교롭게도 두 드라마의 촬영 장소가 겹친 것. 그는 "이상하게 '에덴의 동쪽' 선배님들한테 먼저 가서 인사를 드리게 됐다"며 "유동근, 이미숙 선배님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흐뭇했다"고 했다.
"'에덴의 동쪽' 감독님은 첫 방송 끝나고 문자까지 보내주셨어요. 경쟁작인 우리 드라마를 직접 본 방송으로 보신 모양이더라구요. '마지막회까지 건강하게 열심히 하라'는 문자를 보고 기운이 솟았습니다."
김범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가수는 노래로 들으면 되고, 영화배우는 영화로 보면 된다”는 생각이었단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을까? 발단은 ‘대한민국 영화대상’이었다.
“아는 분이 티켓을 주셔서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구경하러 간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때였을 겁니다. 가까이서 배우들이 서로 격려해주고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는데 너무 매력적으로 비치는 거에요. 저도 언젠가는 저런 멋진 사람들과 같은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부터 연예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그러나 결심만으로 배우가 될 수는 없었다. 김범은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철저한 주변인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극 중 그의 가족은 따로 설정돼 있지 않았다. 주인공 민호(김혜성)와 붙어 다니는 ‘친구 1’ 정도가 그의 몫이었다. 100회까지 그랬다.
그는 “그런 민호 가족에 대한 관찰자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들이 저를 자신과 동일시했던 것 아닐까요? 말하자면 시청자 대신 제가 민호 가족 옆에 있었던 거죠. 묘한 위치에서 인기를 얻은 것 같아요.”
‘꽃보다 남자’ 속 그 또한 후반전의 캐릭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소이정이지만 곧 배우로 매섭게 변신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