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한장 남기지 않고 그냥 우울증 때문에 죽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걸 보니 자연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여러 장의 문장을 쓰고 거기다 손도장까지 찍은 마음이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극히 일부라도 공개하게 됐습니다."
7일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탤런트 장자연씨가 사망하기 직전 장문의 글을 남겼다는 주장은 사실이었다. 9일 새벽에 만난 장씨의 지인 A씨는 고 장자연씨가 남긴 장문의 문건 중 일부를 갖고 나왔다. 그는 '체념'에 빠진 표정이었다.
"글을 공개해봤자 검찰이 수사에 나설 것도 아니고, 갖가지 추측으로 죽은 사람 명예만 더 더럽혀진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 바랍니다." A씨는 "문서 중 일부를 보여드리는 건 이렇게라도 해야 자연이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지인들은 장씨가 최근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면서 무명의 터널을 막 벗어났는데, 우울증 때문에 자살했다는 건 믿을 수 없다며 의구심을 표해왔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2009.2.28 800125-2******〉 긴 문장은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볼펜으로 눌러 쓴 A4용지 여러 장에는 페이지마다 지장(指章)이 찍혀 있었다. A씨는 "연예인이 된 후 얽힌 사람들로부터 받은 고통이 소상히 기술되어 있지만 원치 않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다 보여줄 순 없다"고 말했다.
사망한 장씨는 소속사 문제로도 마음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은 "소속사와 1년6개월여의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분쟁을 겪었다"고 하고 있으나 소속사측 말은 다르다. 소속사측 대표는 8일 "자연이 쪽에서 재계약을 원해서 협의하던 중이었다. 소속사 문제로 고민하다 이렇게 됐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장씨의 고민 상담을 해줬던 다른 기획사 대표 유모씨도 장씨의 심경이 담긴 문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9일 미니홈피에 "연예계 종사자는 자연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단 한명의 공공의 적과 싸울 상대로 저를 선택했다"는 글을 남겼다. A씨는 "고통을 나눌 사람이 필요해서 지인들에게 문서를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뿐 아니라 한국의 무명 여배우에게 '인권'은 너무 먼 얘기다. 장씨의 경우 죽음으로 침묵을 택했지만 살아서 '침묵'하는 여배우도 적잖다. 한 여성 탤런트는 "정부(국세청)가 불공정 거래계약서를 불법이라고 했다지만 문제는 서류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매일 발생하고 있다"며 "계약해지금 돈 1000만원이 없어서 원치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연기자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달라"고 했다. 다른 연기자는 좀 더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놨다. "연예계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결혼한 후에도 밤늦게 술 접대 자리에 불러내는 경우가 적잖아 요즘 일을 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파경을 맞은 여배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왜 여배우들은 침묵하는가. 연예계 관계자는 "문제를 공론화했을 때 누가 피해를 입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피해를 입힌 상대가 그들보다 힘 있는 이들이어서 피해자가 도리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고, 황색 언론은 피해자의 인권보다 선정성에 더 초점을 맞출 텐데 나라도 그런 일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수억원의 개런티를 받는 연예인, 수십억원의 재력가 스타가 존재하는 우리 연예계의 한쪽에서는 꿈을 담보로 잡힌 채 고통을 겪고 있는 무명 여배우란 존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유린하는 건 그들보다 힘이 센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