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강세로 일본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경영난에 시달리던 명동 일대의 오래된 호텔들이 기사회생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관광문화연구원에 따르면 올 1~2월 두달 동안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은 51만80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30만1000명)보다 72%나 늘었다.
명동과 충무로는 사보이호텔(1957년)·아스토리아호텔(1959년)·세종호텔(1966년)·로얄호텔(1971년)·퍼시픽호텔(1974년) 등이 차례로 개업하면서 해외 사절과 재력가들이 즐겨 찾는 고급 호텔가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이후 인근에 롯데호텔·신라호텔·서울프라자호텔 등 대형 특급 호텔들이 줄줄이 개업하면서 명성이 바랬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부터 일본 관광객이 밀려들면서 명동 일대 다섯개 호텔의 평일 객실가동률은 지난해 70% 안팎에서 올 들어 90%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세종호텔 직원은 "예년에는 독도 분쟁이나 북핵문제가 터지면 30% 이상 예약이 취소됐는데, 요즘은 엔화가 워낙 강해서 그런지 '개성공단에 한국 근로자들이 억류됐다'는 뉴스가 나와도 예약이 줄지 않는다"고 했다.
홍콩 스타 청룽(成龍·55)이 즐겨 찾던 사보이호텔은 1975년 회칼로 무장한 '양은이파' 조직원들이 이 호텔에서 '신상사파' 조직원들을 습격한 일명 '사보이사건'으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다. 사보이호텔 관계자는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다가 2001년부터 5년간은 아예 세종호텔에 경영을 위탁하기도 했다"며 "작년 하반기부터 일본 관광객이 몰려 경영이 크게 호전됐다"고 했다.
영화감독들이 즐겨 찾던 아스토리아호텔 홍보팀의 고현주(25)씨는 "일본 손님을 더 많이 끌기 위해 1월부터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이탈리아 식당 리모델링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롯데호텔, 힐튼호텔, 서울프라자호텔 등 인근 대형 특급 호텔의 일본 투숙객 비율은 50%선이다. 이에 비해 명동 일대 호텔들의 일본 투숙객 비율은 90~95%에 달한다.
명동 호텔들의 최대 강점은 '위치가 좋다'는 점이다. 여행사 대표 장광석(40)씨는 "명동은 골목이 좁고 구불구불해서 사람들이 스치며 걸어야 하고, 길 양쪽에 조그만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며 "이런 점이 일본과 비슷해서 일본 관광객들이 특히 명동에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객실 수가 100개 안팎으로 대형 특급 호텔(객실 300~500개)보다 오붓한 것도 인기 비결이다.
일본 관광객 스즈키 유우키(62)씨는 "도어맨이 자주 오는 손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줘서 꼭 친정에 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들 호텔은 숙박비(2인실 단체 할인가 기준)가 10만원 이하로 특급 호텔(15만~20만원)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도 강점이다. 한국관광공사 일본팀 신서경(44) 과장은 "엔화 가치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명동 호텔들이 당분간 호황을 누릴 것 같다"고 했다.
▲3월 26일자 A11면 '명동 일대 오래된 호텔들 엔고(高)특수' 기사 중 세종호텔은 기사에 나온 다른 호텔들과 달리 객실 수가 273실이고, 객실 단가도 13만2000원 이상이라고 알려왔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