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한 자리에서 90년대 잘나가던 개그맨 ‘빛나리’ 최성훈을 만났다. 헌데, 예전 개그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웃음이 사라졌고, 주름이 많이 늘었다. 지난 10년 동안 거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한 탓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결과물이 나왔다고 했는데, 그게 다소 생뚱맞을 물건이었다. 바로 ‘노래반주기’였다.

최성훈에게 제일 먼저 궁금했던 것은 ‘왜 가장 잘 나가던 시기에 방송을 그만두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방송가에서 아이디어맨으로 통했던 최성훈은 IMF 경제위기를 겪던 1990년 말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시골 노인들을 공중파 카메라 앞에 내세우는 모험을 단행했다. 이것이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SBS ‘좋은 세상 만들기’였다. 전 국민이 자식과 세월을 그리워하던 노인들이 한 마디씩 던지는 농담에 눈물과 웃음을 쏟아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성훈은 왜 이런 성공작을 뒤로하고 돌연 사라진 것일까?

노래방 반주기 사업 시작한 개그맨 '빛나리' 최성훈

“방송이 끝난 후 회식 자리에서는 늘 노래방에 가곤 했는데,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는 부르지 않고, 다른 가수 노래를 부르거나 모창(模唱)을 하는 거예요. 이유를 물어보니 반주가 안 좋아서 제대로 부르기가 힘들고, 사람들이 노래 실력이 없다고 잘못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머리에 기막힌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노래방 모든 곡을 음반AR(실제 연주곡)으로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에게 아주 집요한 구석이 있다는 데 있다. 이후로 그는 거의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은 채 10년 동안 ‘전곡원음반주기’ 제작에 들어갔다. 엄청난 시간과 인력, 자본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생각해 보라. 수 만 곡을 연주해야 한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세션들(이승철 밴드의 기타리스트 박창곤, GIT 출신기타리스트 타미 킴, 재즈기타리스트 이정식 등)이 완벽주의자 최성훈의 합격 사인이 날 때까지 연주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곡은 무려 여섯 시간이나 연주해야 했다.

“처음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던 거죠. 막상 제작에 들어가려니, 음반 AR과 노래반주기는 믹싱 자체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키를 조정하는 것도 문제였죠. 정말 어린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듯이 처음부터 하나하나 기술적인 부분을 습득해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는 예전에 방송할 때도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그걸 라이브 같은 개그라고 표현해야 하나? KBS 슈퍼선데이 ‘금촌댁네 사람들’이 그랬고, MBC 오늘은 좋은 날 ‘빛나리’가 그랬다. 꼭 공연을 보는 듯 한 느낌. 실제로 당시 최성훈은 대본을 직접 쓰고 연출까지 해내는 유일한 개그맨이었다.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이니,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일에 인생을 건 그의 선택도 이해가 된다.

아무튼 최성훈의 엄청난 콘텐츠를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은 그의 전 소속사이기도 했던 SM의 이수만 대표였다. 이 대표는 최성훈이 만들어낸 노래반주기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투자를 결정했다. 미디에 의존한 기존 노래반주곡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다. 2008년 가을부터 SM이 만든 노래방 프랜차이즈 ‘SM BRAVO’에 최성훈의 작품이 투입되기 시작했고, 이용자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마니아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한 번 우리 반주기로 노래를 불러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다시 찾습니다. 제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 시장이 아닙니다. 가라오케 종주국이라는 일본, 엄청난 규모의 중국, 그리고 미국과 전세계 노래반주기 시장을 석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디로는 세계진출에 실패했지만, 원음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사랑받을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입니다.”

‘끈기의 사나이’ 빛나리 최성훈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