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아침 서울 서초구 리버사이드 호텔에 투숙 중이던 중국·일본 관광객들은 시내 관광을 하러 나서다 기겁을 했다. 머리나 팔에 빨간 띠를 두른 사람 수십명이 5t 탑차 3대, 이중 철조망, 40kg짜리 가스통 10개, 20L 시너통 6개, 검은색 드럼통 35개를 동원해 호텔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친 것이다.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 수백명이 호텔 바깥을 서성거리며 이들과 대치했다.
이날은 법원 집행관이 리버사이드 호텔에 대해 '명도(明渡·건물을 남에게 넘기기 위해 비우는 것) 집행'을 하는 날이었다. 빨간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은 "법 집행을 실력으로 저지하겠다"고 나선 이 호텔 상가 세입자들이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호텔 소유주인 A건설회사가 명도 집행을 강행하려고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호텔측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호텔은 "호텔과는 상관없고, 건물과 관계된 일"이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오후 6시쯤 세입자측은 "임대계약 우선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농성을 풀었다. 경찰은 합의 소식을 듣고 호텔 주변에 배치했던 전·의경 600여명을 모두 철수시켰다. 그후 진짜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했다. 합의 내용을 잘못 전해 들은 한 세입자가 용역업체 직원 20여명을 동원해 호텔 한쪽을 점거하고 로비 바닥에 여러 차례 시너를 뿌렸다.
이들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을 향해 "불 질러 버리겠다. 다 나가라"고 소리쳤다. 관광객들은 깜짝 놀라 호텔 밖에서 기다리거나, 짐을 챙겨 다른 호텔로 옮겼다. 이날 호텔에 묵은 외국인 관광객 120여명 중 70여명이 같은 선택을 했다.
세입자들은 이날 오전 "제2의 용산 참사를 막아 달라"는 유인물을 돌렸다. "호텔 안에는 비단 상인들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있다. 명도 집행을 강행한다면 일부 상인들은 LP가스통을 옥상에 준비해놓고 투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면 강남 도심에서 '제2의 용산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경찰이 철수한 호텔에는 세입자 수십명과 용역업체 직원 수백명, 아직 치우지 않은 가스통·시너통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