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엽아, 이건 아니잖아. 우리 같은 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로 했잖아."
한국농구의 거목 서장훈(35ㆍ전자랜드)이 현주엽(34ㆍLG)의 전격적인 은퇴에 대해 격정을 토로했다.
현주엽의 1년 선배인 서장훈은 휘문중-고등학교를 함께 나와 대학에선 연세-고려대 간판으로 쌍벽을 이루는 등 20여년간 우정을 쌓아왔다. 서장훈은 현주엽을 "친동생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그런 그가 후배의 은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너무 착잡해서 위로 전화도 못했다"고 말문을 연 서장훈은 "주변 분위기에 떠밀려 떠나는 것 같아 더 마음 아프다"고 아쉬워 했다. 자신의 결혼식(5월 23일)을 앞두고 현주엽과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은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서장훈은 "어떤 말못할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국 농구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를 이런 식으로 보내면 안된다"며 격앙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서장훈은 남몰래 품어온 '우정의 약속'도 공개했다. 그가 더욱 아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장훈은 "몇 년 전부터 주엽이를 만날 때마다 줄곧 다짐한 게 있었다. '주엽아 우리 이제 나이도 있으니까, 은퇴하기 전에는 꼭 같은 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고 명예롭게 같이 떠나자'라고 했는데..."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서장훈이 이런 약속을 한 것은 가까워질 듯, 멀어질 듯 애틋한 인연 때문이다. 둘은 중-고등학교에서 철모르던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대학에서 헤어졌지만 대표팀에서 우정을 유지해왔다. 프로에 들어와서는 1998~1999년사이 SK에서 1년6개월 정도 함께 지내다가 현주엽이 트레이드로 떠난 이후 서로 바라만 봐야 했다.
서장훈은 현주엽과의 첫 만남을 회고하기도 했다. "내가 휘문중 1학년때 도성초등학교 6학년이던 주엽이가 우리 학교에 미리 와서 훈련할 때 처음 알았다. 농구감각과 체격이 정말 좋은 아이였다."
이후 친형제 이상의 우애를 쌓아온 서장훈은 "주엽이와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주엽이 덕분에 우승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서장훈은 '현주엽과 라이벌 관계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주위에서 흥미를 유발하려고 지어낸 낭설이다. 우리끼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서장훈은 현주엽의 새로운 인생에 대해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형님'은 '아우'의 은퇴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은퇴)선언했다고 완전히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중에 몸상태가 좋아지면 컴백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현주엽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