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구동설계팀 박모(41) 책임연구원은 지난 1일 오후 평택역 근처 PC방에서 해외 협력업체인 G사 엔지니어와 메신저를 통해 회의를 하고 신차 개발자료를 주고 받았다. 평택공장 내 연구소 사무실에 자신의 컴퓨터가 있었지만 사용하지 못한 지 오래다. 쌍용차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고 연구소까지 봉쇄했기 때문이다. 사측 구조조정안에 따라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쌍용차 노조원 970여명은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지난 5월21일부터 공장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연구소가 봉쇄된 뒤에도 박씨는 일주일에 2~3일은 협력업체 사무실을 전전하며 밤샘작업을 한다. 내년 초 출시 목표인 신차 'C200' 개발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의 생명줄이라 할 신차 개발이 늦어지면 가뜩이나 풍전등화 상태인 회사의 회생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지난 3월 이후 4개월째 월급 한 푼 받지 못했지만, 해외 엔지니어가 찾아오거나 지방 협력업체를 다닐 때 자기 돈을 써 가며 일하고 있다. 박씨는 "집사람 볼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일자리와 가정을 지키려면 회사를 살리고 보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라며 "파업이라고 개발자인 우리까지 일손을 놓으면 회사가 정말 망한다"고 했다.
쌍용차에 전자장치 부품을 납품하는 A사 사장은 지난달 회사 개발실 옆에 컨테이너 임시숙소를 하나 마련했다. A사로 와서 부품개발 일을 하고 있는 쌍용차 엔지니어 10여명을 위한 숙소다. A사 사장은 "파업 중인데도 개발을 중단하지 않기 위해 협력업체에 침낭을 가져다 놓고 묵묵히 밤을 새우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고 말했다.
쌍용차 엔지니어 600여명은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하고 있는 중에도 신차 'C200' 개발에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연구소가 봉쇄된 터라 신차 개발을 함께 진행하는 협력업체 연구실을 전전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난달 26일을 고비로 동요하는 사람이 늘었다. 공장으로 들어갔다가 노조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쌍용차 선행개발팀의 고참 연구원 김모(44)씨는 지난달 26일 노조의 점거파업 중단을 요구하는 임직원 대회에 참석한 뒤 직원 3000여명과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30여m쯤 들어갔을 때 갑자기 머리 바로 오른쪽으로 무언가 '쌩'하고 날아갔다"면서 "노조원이 새총으로 쏜 커다란 금속볼트였는데 하마터면 머리가 박살 날 뻔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공장으로 들어가 회사측에서 확보한 텐트에 앉아 있던 설계담당 이모(43) 책임연구원은 지게차에 깔릴 뻔했다. 노조원들이 모는 6대의 지게차가 갑자기 이씨가 앉아 있던 텐트를 밀어붙이며 돌진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렵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회사가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번에 노조의 폭력행위를 접하고는 심한 충격과 회의에 빠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26~27일 이틀간 공장으로 들어간 임직원들을 노조측 선봉대와 외부세력이 쇠파이프와 오물·소화기·금속볼트 새총·지게차를 이용, 공격해 코뼈가 내려앉고 안면이 골절되는 등 80여명이 다쳤다.
유혈사태까지 발생하자 26일 공장으로 진입했던 연구원과 임직원 3000여명은 결국 32시간 만인 27일 밤 전원 철수했다. 주모(46) 수석연구원은 "노조원들은 공장에 부인과 어린 아이들을 데려와서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월급 한 푼 못 받으면서 협력업체 사무실을 떠돌며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려고 하는 우리들의 눈물은 누가 알아주느냐"고 말했다.
자동차 전문가들이 더 걱정하는 것이 있다. 쌍용차의 마지막 남은 자산이라고 할 연구인력과 기술 노하우가 망가지는 것. 제품기획·설계부터 부품조달·설비·생산·판매·AS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전 부문을 지난 20년간 다뤄봤다는 것은 아무리 거대자본을 투입, 새 회사를 만든다 해도 단기간에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극한적 노사대립이 계속되면서 연구원들이 속속 떠나가고 있다. 지난 1년간 100여명이 이미 나갔고, 지난달에만 10여명이 또 그만뒀다. 이들 중에는 자동차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다른 일을 택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쌍용차 연구소장 이수원 상무는 "그만두는 연구원들이 '떠나서 미안하지만 남은 사람들이 꼭 쌍용차 살려달라'고 당부하며 갈 때면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눈물로 보낸다"면서 "이 상태가 더 지속되면 20년간 피땀 흘려 축적한 쌍용차의 기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