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문화 체험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외국인을 상대로 운영 중인 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게스트하우스(일명 한옥체험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 시설이라는 시비가 일고 있고 "주거환경을 악화시켰다"며 이웃 주민들의 민원도 끊이질 않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서울시가 한옥을 매입해 민간업자들에게 운영을 맡긴 시설이기 때문에 "결국 서울시가 불법을 조장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가 한옥 매입해 수리 후 민간에 운영 맡겨
모두 6채… 외국인 상대 하루 숙박료 최대 10만원
북촌 한옥마을에는 현재 6채의 게스트하우스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는 2002년 제정한 한옥지원조례에 따라 이 일대 한옥을 사들인 뒤 운영자를 공모해 위탁하는 방식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왔다. 운영자는 서울시에 연간 보증금 또는 월세 형식의 사용료를 내고 자신이 한옥에 거주하며 외국인을 상대로 숙박 사업을 벌인다. 운영자가 서울시에 내는 연간 보증금과 월세가 시세의 50% 수준이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해 숙박을 통한 영업수익까지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운영자들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1박에 최소 3만5000원부터 많게는 10만원 안팎의 숙박료를 받고 있다. 관공서 등에서 제작하는 각종 홍보 팸플릿이나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도 하고 예약도 받는다. 6월부터 9월까지의 관광 성수기에는 게스트하우스별로 매달 수백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2001년부터 북촌 한옥마을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 사업을 벌여 왔다. 종로구 가회동·삼청동·계동 일대를 대상으로 '북촌가꾸기종합대책'을 세우고 한옥지원조례도 제정했다. 산하기관인 SH공사와 함께 이 일대 한옥 33채를 매입해 개·보수 하는 한편 한옥 소유자가 보수 공사를 벌이면 최대 1억원까지 공사비를 보조해줬다. 서울시는 매입한 한옥을 민간에 위탁해 게스트하우스뿐 아니라 전통공방, 사료관 등 다양한 전통 체험의 장으로 활용해 왔다. 서울시는 이 사업에 총 966억원의 예산을 배정했고 현재까지 모두 45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북촌 난개발을 막기 위해 올해 안에 이 일대를 역사문화 보존지구로 규정하는 지구단위계획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2005년 주민들 소음·쓰레기 호소하며 민원, 이사도 속출
고충위 ‘폐쇄’ 권고… 게스트하우스 측은 ‘적법 계약’ 반발
게스트하우스가 논란을 빚기 시작한 것은 인근 주민들과의 갈등과 민원제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5년 서울시 종로구 계동 소재 S게스트하우스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게스트하우스 인근 주민들은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선 이후 관광객 유입으로 조용하던 한옥마을에 소음이 증가했고 골목 주변 쓰레기도 늘었다”며 “외지인의 발길이 뜸하던 마을에 유동인구가 늘면서 치안 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 등 주거 환경이 훼손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S게스트하우스 주변 한옥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주민 안모씨는 “한옥체험관이라고 이름만 그럴싸하게 붙여놨지 실제로는 값싼 숙박시설에 불과하다”며 “한옥마을을 보존한다면서 만든 게스트하우스 때문에 오히려 주민들이 하나둘 이곳을 떠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S게스트하우스 주변의 3가구가 이미 이사를 갔고 추가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곳도 있다는 게 안씨의 설명이다.
당시 게스트하우스 인근 주민들은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넣고 "S한옥체험관 운영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후 고충위의 조치가 나오며 사태는 더 꼬였다. 고충위가 2007년 3월 "한옥체험관은 공중위생법 제3조1항과 관광진흥법 제4조2항에 따라 관광숙박업의 등록을 해야 하는 숙박시설에 해당한다"면서 "서울시는 이를 어긴 불법 체험관의 숙박행위에 대하여 단속조치하고 위법요소가 해소될 때까지 해당 체험관을 폐쇄조치함이 타당하다"고 시정 권고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가 이웃 주민들의 단순한 불만 대상을 넘어 불법 시설물이라는 판정까지 받은 것이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 측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민원 대상이 됐던 S게스트하우스의 운영자 현모씨는 “서울시, SH공사와 맺은 위탁 계약은 주택 및 상가 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함부로 계약을 파기하거나 내쫓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충위의 시정 조치에도 불구하고 “민간 운영자와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야 행정조치를 예고하고 나선 서울시의 행태에 대해서도 게스트하우스 측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현씨는 “서울시가 2008년 재계약 공고를 해 놓고 지금에서야 이를 번복하는 식의 행정절차를 예고한 것은 누가 봐도 약자에 대한 강자의 힘의 논리”라며 “이번 사안은 위탁운영 공모를 통해 정상적으로 계약한 우리 잘못이라기보다 서울시의 행정 실수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식사 제공·모객하는 불법 숙박행위는 단속 대상”
영업허가 불가능… 서울시는 최근에야 관련법 개정 나서
S게스트하우스를 둘러싼 민원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고 논란이 가열되는 와중에 최근에는 새로운 시비까지 불거졌다. 북촌 일대가 구청의 용도지역상 숙박업 등의 영업시설 운영이 불가능한 1종 주거지역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충위가 게스트하우스를 불법 시설물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게스트하우스가 관련법에 규정된 관광숙박업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설령 게스트하우스가 관광숙박업 등록을 하려고 해도 법적 근거가 없어 해당 관청에서 영업허가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한 북촌가꾸기종합대책 사업의 대표적 성과인 게스트하우스가 불법 숙박업을 조장한 정책이 되고 만 것이다. 한 주민은 “서울시 공무원들이 어떻게 법적 근거도 따지지 않고 사업을 추진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불법인 줄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인지, 진짜 불법인 줄 몰랐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와 SH공사는 게스트하우스의 불법 시비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SH공사는 “(한옥체험관은) 민박의 일종으로 신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폈으나 법적으로 서울 지역에선 민박이 허용되지 않는다. 서울시도 “‘전통문화 알리기’라는 명분에서 출발한 순수 한옥체험관으로 봐달라” “불특정 외국인을 상대로 전통 알리기 차원에서 운영되는 한옥체험관을 숙박업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항변을 하고 있지만 정부 관계 부처의 공통된 의견은 “그럼에도 북촌에서 숙박행위를 하고 있는 한옥체험관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전기태 사무관은 “한옥체험관을 숙박업으로 단정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적법하다는 얘기가 아니다”며 “식사를 제공하고 광고로 모객도 하는 지금의 북촌 게스트하우스는 유사 숙박행위로 단속 대상”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외국인이 단체로 숙박을 할 경우 위생관리법, 소방법 등의 적용을 받아야 하지만 허가된 영업장이 아닌 게스트하우스는 이러한 법적 적용 대상도 될 수 없다.
그동안 서울시는 게스트하우스 운영자가 수익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등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사업을 주먹구구식으로 벌여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북촌 일대를 담당하는 서울시 주택국 한옥문화과가 신설된 것도 지난 3월로, 그동안은 건축과에서 한옥 관련 사안별로 담당자들이 차출돼 관련 업무를 처리해 왔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 사업을 벌여왔지만 담당 인원 부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며 게스트하우스 사업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전면 백지화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한옥문화과 담당자는 “일부 민원제기로 촉발된 이번 사안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가 많은 한옥체험관 모두를 문닫게 할 수는 없다”며 “우선적으로 문제가 된 S한옥체험관과 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용도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뒤늦게 정부에 관계 법령 개정도 촉구하고 나섰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관광진흥법 시행령을 개정해 한옥체험관업을 관광사업의 한 종류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문광부 담당 사무관은 "시행령 개정 작업에 이미 착수한 상태로 올해 안에 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기성 자금 유입되며 매매 호가 2006년의 2배
한옥 추가 매입 어려워… 빈집만 늘어나는 부작용도
현재 북촌 한옥의 매매 호가는 급등하는 추세다. ‘투자 가치가 있다’는 소문이 부동산 업계에서 번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최고조였던 지난 2006년에 비해서도 2배 가까이 올랐다. 서울시의 대대적인 정비사업과 경기 침체 여파로 갈 곳을 잃은 유동자금이 유입된 결과로 해석된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이 일대에 대한 정비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한옥을 매입해야 하는데 기존 예산으로는 한옥 구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시 한옥문화과의 담당자는 “올해 예산이 20억원 정도인데 3년 전에 비해 한옥 집값이 2배 가까이 올라 추가 매입은 힘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게스트하우스를 비롯한 한옥 위탁 운영자들의 부담도 커졌다. 위탁 계약 수수료 가격이 부동산 가격과 연동된 탓에 부동산 가격 상승이 수수료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돼 위탁운영에 부담을 느끼는 곳이 많다. 현재 한옥 사용료는 서울시 조례 규정에 따라 재산가액의 1000분의 10으로 정하고 있다.
투기성 자금이 들어와 한옥을 사들이다 보니 실제 거주하는 인구는 오히려 줄어드는 공동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옮겨와 살면서 유명해진 가회동 31번지 일대의 공실률이 높다는 게 인근 주민들의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부 빈집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1200여채 한옥 밀집 지역
서울시, 보존 차원 33채 매입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재동, 삼청동, 계동 일대의 한옥이 밀집한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경복궁, 창덕궁, 비원 사이 북악산 기슭에 있는 한옥 보존지구로 ‘청계천과 종로의 뒷동네’라는 뜻에서 북촌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조선시대 왕족, 사대부 등 고관대작이 주로 거주해온 고급 살림집터다. 원래는 솟을대문이 있는 집 몇 채와 30여호가량의 한옥만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옥이 크게 늘었고 현재는 약 1200여채 정도가 들어서 있다. 서울시는 북촌을 보존하기 위해 2000년 ‘한옥가꾸기종합대책’을 마련하고 966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각종 지원사업을 펼쳐 왔다. 갈수록 줄어드는 한옥을 유지하기 위해 서울시가 직접 매입해 다양한 용도로 위탁 운영하는 곳도 33채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