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감정, 선수 쟁탈전, 최고의 명승부까지.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 라이벌 '엘 클라시코'가 축구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 모든 볼거리를 제공한다. 두 클럽의 뿌리깊은 라이벌 관계는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냈을뿐 아니라, 최근에는 한국 소설의 소재로까지 사용됐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는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팬인 남편과 아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축구에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엘 클라시코 더비는 어떤 역사를 담고 있을까. |
뿌리 깊은 '지역 감정'이 오히려 약 … 자존심 건 선수 쟁탈전 |
▶뿌리깊은 지역감정은 나의 힘
스페인은 유럽의 많은 나라들 중에서도 지역감정이 심한 곳이다. 복잡한 역사와 지방마다 다른 언어 탓이 큰데,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도시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경쟁 의식이 엘 클라시코의 뿌리가 됐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는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 지방의,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다. 원래부터 존재하던 두 도시의 지역감정은 프랑코 장군의 독재 치하(1939~1975년)에서 더욱 심해졌다. 프랑코는 카스티야 지방을 중심으로 독재 정치를 펼쳤고, 독립을 원하는 스페인 북동부의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을 억압했다. 그러면서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통치자의 후원을 받은 레알 마드리드는 최고의 클럽으로 커나갔고, 이에 불만을 품은 카탈루냐 사람들은 바르셀로나를 연고지로 둔 FC바르셀로나를 열광적으로 응원하게 됐다. 이것이 엘 클라시코 더비가 다른 라이벌전보다 더 치열한 양상을 띠는 큰 이유다.
2007년 스페인 현지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 축구팬의 32.8%가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며, FC바르셀로나 팬이 25.7%로 나타나 뒤를 이었다. 팬 비율에서 3위인 발렌시아는 겨우 5.3%로 한참 뒤떨어져 있다. 엘 클라시코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선수 쟁탈전으로 불거진 라이벌전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는 선수 쟁탈전이 벌어질 때마다 신경전이 극에 달하곤 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이 1950년대 '금빛 화살'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아르헨티나)를 놓고 벌인 경쟁이다. 콜롬비아의 밀로나리오스 클럽 소속이던 디 스테파노는 탁월한 실력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았는데, 복잡한 과정 끝에 두 팀이 모두 디 스테파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됐다. 결국 스페인 축구협회의 개입으로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됐는데, 여기에 당시 통치자였던 프랑코가 개입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로 와서 유러피언 챔피언스컵 5회 우승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내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 됐다.
▶맞대결의 역사는?
두 팀의 역사적인 첫 대결은 1929년 2월 열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2라운드에서 이뤄졌다. 이 경기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2대1로 승리했고, 이어서 5월 열린 2차전에서는 FC바르셀로나가 1대0으로 이겼다. 이로부터 계속된 엘 클라시코 더비는 두 팀이 계속 스페인 최강의 전력을 유지하면서 거의 균형을 이뤘다. 1929년부터의 엘 클라시코 더비 전적을 보면 레알 마드리드가 68승30무60패로 근소한 우세를 보이고 있으며, 넣은 골 수도 262골(FC바르셀로나 242골)로 앞서고 있다. 홈 경기 전적도 레알 마드리드(39승12무10패)가 FC바르셀로나(38승12무12패)에 약간 앞서지만 거의 비슷하다. 양 팀간 가장 큰 점수차가 났던 경기는 1943년 스페인 국왕컵에서 나온 레알 마드리드의 11대1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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