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 1898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박모(48) 전 동아건설 자금부장의 가훈(家訓)은 '사랑으로'였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경찰의 현장 사진은 도박판에서 '강남 박 회장'으로 통한 그의 '통 큰' 사생활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의 2층짜리 별장 곳곳에는 코냑과 위스키 등 고급 양주 100여병이 진열돼 있었다. 9단짜리 와인 저장고에는 고급 와인 수십 병이 쌓여 있었다. 거실엔 고급 가죽 소파가 놓였고, 화장실엔 편백나무 욕조를 갖췄다. 자줏빛이 감도는 안방의 자개장 서랍에는 강원랜드 마크가 찍힌 10만원짜리 노란색 칩이 가득했다.

양평군 목왕리의 별장 거실에는 가훈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박씨의 부인 송모(46·구속)씨와 두 자녀의 단란한 한 때를 찍은 대형 사진도 있었다. 이곳도 장식장에 고급 양주 수십 병이 가득했다.

박씨는 올 초부터 8월 중순까지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검은색 가죽 표지 다이어리에 자신의 일과와 금융 거래 내역을 꼼꼼히 적었다. 본지가 입수한 박씨의 다이어리에는 '대담한 도박 중독자'와 '숫자에 밝은 꼼꼼한 자금부장'의 양면이 드러난다.

회삿돈 1898억원을 빼돌린‘강남 박 회장’은 사생활도 화려했다. 가훈과 가족사진이 걸려 있던 경기도 양평군 목왕리 별장(왼쪽 사진)과 고급 술병들이 가득 진열돼 있었던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 별장.

박씨는 회사에서 자신의 범행을 눈치 채자, 지난 7월 8일 휴가를 내고 잠적했다. 이날 그는 다이어리에 "언젠가는 일이 발생하고, 문제가 될 거라 예상했지만 조금 빨리 터져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솔직히 두렵다"고 썼다. 다이어리는 이어진다. "정신없이 수표 바꾸고 환전하고 바보처럼 하루를 보냈다"(7월 9일), "혼자 숨어 지내는 것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쉽지 않다"(7월 12일), "아직은 자수하고 싶지 않다"(7월 14일) 같은 글도 보였다.

그는 도피생활 동안 회사 여직원 권모(32)씨와 함께 지냈다. 부인 송씨는 이를 몰랐다고 경찰은 말했다.

"14일째. 이대로 살 수 있을까. 살아야만 하나? 어떻게 하지?"(7월 21일) 같은 글에서 초조감이 묻어났다. "현상금 3억이 붙었다고 하니 정말 큰일이다"(7월 18일), "회사가 날 너무 몰아세우는 건 아닌지"(7월 20일) 같은 글도 보였다.

8월 들어 "자포자기" "해외/시골" 같은 글귀를 적던 박씨는 8월 18일을 끝으로 더 이상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다. 그는 지난 2일 잠적 석 달 만에 경찰에 잡혔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1898억 중 1000억원 정도를 주식으로 흔적 없이 탕진했고, 나머지는 회사에 다시 입금했다"고 했다. 경찰은 1000억원 중 상당액이 가·차명으로 은닉됐을 것으로 보고, 국세청과 힘을 합쳐 박씨가 인출했거나 강원랜드 등에서 사용한 6000여장의 고액권 수표를 추적 중이다. 광진서 관계자는 "박씨 성격으로 봐서 횡령액 사용 내역을 일목요연하게 적어놓은 '비장(비밀장부)'이 있을 것 같아 찾고 있다"고 했다.

["기업의 진짜 적은 부패한 기업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