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돈 1898억원을 빼돌린 동아건설 전 자금부장 박모(48)씨의 별장에서 나온 고급 양주와 와인값을 계산해보니 1억원대였다.

9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하남시 감북동 별장 사진을 분석한 주류 전문가들은 이곳 장식장 한 개에 진열된 양주만 5000만원어치라고 했다. ▲시가 300만원짜리 '루이 13세' 14병 ▲300만원짜리 '리처드 헤네시' 1병 ▲발렌타인 30년산 1병과 21년산 2병 ▲로열 살루트 21년산 4병 ▲기타 양주 10여병 등이다. 같은 별장에 있는 또 다른 장식장에 든 술도 ▲'루이 13세' 5병 ▲리처드 헤네시 1병 등 2000만원어치였다.

부엌 보관대의 와인 30여병은 '몬테스 퍼플 에인절(Montes Purple Angel)'부터 '티냐넬로(Tignanello)'까지 소비자가격 15만~30만원짜리였다. 저장고 안의 와인 수십 병도 한 병당 수십만원대의 고가로 추정됐다. 유리병에 담긴 생수 20여병은 0.8L짜리 한 병에 1만원 하는 노르웨이산이었다.

현상금 3억원이 어디로 갈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아건설 임직원은 지난 7월 중순 '현상 수배' 전단 10만장을 뿌리고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냈다.

문제는 박씨를 잡은 사람이 민간인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점이다. 경찰은 지난 2일 박씨의 부인 송모(46·구속)씨를 미행해 박씨를 검거했다.

동아건설 전 자금부장 박모씨 별장에 있는 양주 진열장. 수백만원이 넘는 고급 양주가 가득했다.

회사측은 당초 "현상금은 임직원들이 여름 휴가비를 반납해서 현상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원을 따로 확보한 일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회사 관계자는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현상금의 처리는 회사가 결정할 일"이라며 "경찰이 붙잡았으니 딱히 지급할 대상이 없어졌다고 본다"고 했다. 경찰도 아직 현상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범인 검거는 경찰 본연의 업무인데다 경찰이 달라고도 하지 않으니 현상금 얘기는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박씨는 은신처에서 발견된 현금 7억원이 수중에 남은 돈 전부라고 했다. 900억원 이상을 도박과 주식에 탕진하고 800억~900억원은 회사에 도로 입금했다는 것이다.

박씨의 주장에 대해 수사 전문가들은 "경제사범들의 전형적 수법 같다"고 했다. 수사 경력 22년차의 경찰관은 "조용히 출소해 '묻어 놓은' 돈으로 여생을 편안히 사는 경제사범이 꽤 있다"며 "박씨도 숨겨둔 돈이 수백억원대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박씨가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공범들과 짜고 판돈을 현금화해 뒤로 빼돌렸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카지노에서 실제로 돈을 잃은 게 아니라 돈 세탁 창구로 삼았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박씨는 도피 중이던 7월 22일 '양수리·감북동 집도 회사측에서 알게 되어 무용지물이 됐다. 자기 이름으로 해서 추적당했나 보다'라는 글을 다이어리에 썼다. 차명 부동산이 더 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경찰은 "박씨의 회사 동료와 선·후배까지 금융 거래 추적 범위를 넓혀야 한다"며 "몇개월씩 걸리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경찰은 이날 박씨의 신병과 수사 기록을 서울 동부지검에 송치했다. 검찰은 동부지검 형사3부장검사를 팀장으로 검사 3명과 수사관 7명, 대검에서 파견된 자금추적 수사관 6명 등 17명으로 특별수사팀을 편성, 박씨가 빼돌린 돈의 행방을 추적할 계획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특별전담반을 편성해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