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물결, 잠실벌을 압도하다.'
잠실구장은 해태 시절부터 KIA에게 '제2 홈구장'으로 불린다.
그만큼 잠실을 찾는 KIA의 팬층이 두텁다는 얘기다. KIA는 이 기대에 부응하듯 올 시즌 잠실구장서 두산과 LG를 상대로 13승6패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6할8푼이 넘는 엄청난 승률로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높다.
광주와 인천을 거쳐 전장을 잠실로 옮긴 22일 KIA와 SK의 한국 5차전은 예상대로였다. 중립구장 경기였지만 KIA팬들의 노란 막대풍선이 관중석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했다.
▶팬은 KIA의 힘
경기 전 홈팀의 자격으로 1루측 덕아웃에 앉아 있는 KIA 조범현 감독에게 "왜 KIA가 잠실에서 유독 승률이 높은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렇게 승률이 높나?"라고 씩 웃은 조 감독은 "선수들이 잠실에만 오면 마치 홈경기처럼 편안하게 경기를 하는 것 같다. 특히 타자들이 잘 쳐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KIA 타선의 잠실 팀 타율은 무려 3할1푼1리에 이른다. 19경기의 게임당 평균 득점은 7.05점으로 홈인 광주구장을 능가한다.
"승부는 해봐야 하지 않겠냐"면서도 조 감독의 표정에선 긴장감보다는 편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KIA 선수들도 한결같이 "잠실은 원정구장 같은 느낌이 별로 없다"며 은근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야구가 멘탈 스포츠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광주 못지않은 열광적인 KIA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때문이라는 것이 야구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의견. 조 감독의 얘기가 이어질 때가 경기 시작 2시간 전인 오후 4시. 그런데 외야 관중석과 내야석 상단 일반석 자리는 벌써부터 메워지기 시작했다.
▶옐로, 레드를 압도하다
경기가 시작된 오후 6시, 한 눈에 팬층이 구분된다. KIA 팬들은 노란색 풍선, SK 팬들은 빨간색 풍선을 들고 있기 때문. 그런데 외야석은 모두 KIA팬들이 '접수'했고, SK측 응원석인 3루측도 좌우로 노란색 풍선이 에워쌌다. SK팬들은 3루측 가운데와 상단 일반석 정도에만 앉아 있어서 마치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확보된 표 가운데서도 7차전까지 이미 KIA 관중석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KIA팬임에도 3루측에 앉아 있던 직장인 정 현씨(35)는 "어차피 3루에도 KIA팬들이 많이 앉아 있으니 상관없다. 야구장에 입장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KIA팬들은 3루측에 앉아서도 1루측에서 시작된 파도 응원에 기꺼이 동참하며 흥이 난 모습이다. "KIA 없으면 못 살아~"라는 응원가뿐 아니라 선수단의 연호 소리가 유난히 더 크게 들렸다. 1루측 스피커가 3루측보다 더 성능이 좋은 영향도 있었지만 그만큼 팬들이 많았기 때문.
6회 SK 김성근 감독이 심판 판정에 거칠게 항의를 하다 퇴장을 당한 상태에서 SK팬들이 "김성근, 김성근"을 연호하자 "우~" 하며 대응을 한다. 몇몇 SK팬들이 그라운드에 항의의 뜻으로 물병이나 오물을 투척하자 한 KIA팬은 "SK팬들이 점잖은 것 같다. 만약 조범현 감독이 퇴장당했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을 것"이라며 열정이 지나쳐 유별나게 보일 수 있는 KIA팬들의 '다혈질'을 살짝 꼬집었다.
9회 로페즈가 SK 마지막 타자인 박재홍을 2루수 땅볼로 잡고 완봉으로 경기를 끝내자 환호가 하늘을 찌른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20분이 넘게 관중석에 남아 "KIA 없이는 못 살아"라고 외친다.
직장인 장현영씨(38)는 "6차전뿐 아니라 7차전 표도 구해놓은 상태다. 마음 같아서는 6차전에서 끝냈으면 좋겠지만 7차전까지 가면 2경기나 더 볼 수 있는데..."라며 행복한 고민을 했다.
광주구장이 만약 3만석 구장이었다면 잠실 중립경기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광주의 열악한 인프라에 대한 항의 의미로 분출된 열기가 잠실을 KIA의 제2홈구장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 잠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