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한반도 3배 정도의 영토와 4700만명 인구를 가진 유럽과 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는 나라이다. 요즘 우크라이나의 최대 관심은 내년 1월 대선에서 누가 집권할지 여부다. 하지만 고려인이나 외국인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수도 키예프에서 600㎞ 떨어진 헤르손은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와 가까운 드네프르 강변 도시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여름에 가장 맛있는 수박을 꼽으라면 헤르손 수박을 꼽는다. 우크라이나 사람, 그루지야 사람, 고려인이 똑같은 땅에 똑같은 수박씨를 뿌려도 맛이 다르다. 우크라이나 사람은 넓은 땅에 씨를 뿌리고 만고강산 잘 자란다고 믿고 가만둔다. 그루지야 사람들은 부지런히 가꾸지만 포도주와 낮잠을 즐기며 더운 낮 시간을 허비한다. 고려인들은 해 뜰 때부터 해 지는 저녁까지 밭 근처에 움막을 짓고 살며 정성을 다해 수박, 양파, 당근, 양배추 등을 가꾼다. 그래서 맛이 다르다. 고려인 수박이 가장 달다.
우크라이나에는 약 3만명의 고려인이 있다.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5년마다 인구 조사가 있지만 거주지 등록이 되지 않은 고려인, 중앙아시아나 러시아에서 온 무국적자, 혼혈아 등이 섞여 있어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한민족인 고려인들은 1년에 몇 차례 모임을 갖는다. 신정 설날, 그리고 추석 등 우리 고유명절에 모이지만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의 가장 큰 축제는 10월에 펼쳐지는 '코레야드'라는 예술 공연 축제다. 올해 14회로 수박의 고장 헤르손에서 고려인들이 만났다.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개인이나 팀의 장기 자랑과 우리 고유의 멋을 부리기 위해 30여개 팀이 참가하여 공연을 했다. 지난 24일 오후 4시 헤르손 쿨리샤 드라마 극장에서는 300명 이상의 고려인들이 모인 가운데 한민족의 춤사위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펼쳐졌다. 우리만의 소리라고 생각하던 사물놀이가 울려 퍼지고, 부채춤 공연이 시작되자 객석에서는 환호가 이어졌다. 필자는 눈물을 흘리며 이 광경을 숨죽여 봤다.
이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누가 고려인인가? 왜 그들은 한민족의 일원이지만 고국과 1만㎞ 넘는 거리에서 다른 국적을 가지고 한민족이라 항변하듯 우리 민요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인가? 우크라이나 정부의 소수민족위원회 아바네샨 아쇼트는 "우크라이나 100여개 소수민족 중 한민족만큼 자신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공연하는 소수민족은 없다"고 밝히면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트라핀 헤르손 시장은 "이러한 행사를 헤르손에서 치르는 것이 더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날 고려인들은 3~5세대를 지나며 우리말을 거의 잊었지만 마음만은 한민족 하나로 뭉쳤다. 전 세계 약 700만을 헤아리는 한민족 동포들의 심성은 비슷하다고 느꼈다.
입력 2009.10.30.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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