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여가수가 부르는 '아버지'가 사람들 마음을 흔들고 있다. 주한 미군이었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가수 인순이(52) 목청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다.
"열네살 때까지 간혹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미국에 있는 아버지를 직접 느껴본 시간은 전혀 없었다"는 그이지만 무대에서는 "한 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며 거꾸로 용서를 빈다. 그리고 이 절실한 노래는 청중들 누구나 갖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촉촉하게 되살려낸다. '거위의 꿈' 이후 인순이 최고의 히트곡이자 요즘 중·장년층이 가장 즐겨 듣는 노래다.
"사실 전 아버지의 자상함이나 엄격함 같은 걸 모르죠.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주변 사람들을 통해 간접 경험한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아버지들을 떠올리며 노래할 때도 많아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짓눌려 무뚝뚝해 보일 때도 많지만 '사랑합니다' 한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런 아버지들이죠."
인순이는 이 노래로 활동하면서 온갖 가요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가요무대'에서는 고령의 원로 가수들과, '뮤직뱅크'에서는 10대 아이돌 스타들과 교유하며 가뿐히 세대를 뛰어넘는다. "몸살이 심해서 그저께는 리허설 마치고 링거를 맞은 뒤, 다시 라이브를 했다"며 머플러를 단단히 동여맨 그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무대를 가리는 사치를 부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거대한 무대가 다가왔다. 미국의 유명 공연장인 뉴욕 카네기홀 주공연장인 아이작 스턴홀에서 내년 2월 5일 콘서트가 잡혔다. 주로 실력을 인정받는 클래식 뮤지션들이 서는 무대다. 인순이로서는 99년 첫 공연 이후 11년 만의 기회.
"유쾌한 심정이에요. 첫 공연 할 때는 엄청 부담스러웠죠. 신경성 장염, 위염 때문에 한 달쯤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단 한 번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제가 어머니의 힘만으로 얼마나 잘 자랐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잔뜩 흥분했었던 거죠. 달나라에 태극기 꽂고 오는 듯한 거창한 감회가 밀려들었어요."
그는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대관 심사에 잇따라 탈락한 뒤, 지난해 기자회견을 열고 전문 공연장이 대중가수를 외면한다며 비판,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는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 못 서니까 다시 카네기홀을 뚫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까 두렵다"며 "어쨌든 오페라 극장에서 노래하는 건, 아직도 제 꿈"이라고 했다. "쉽게 이뤄지면 그건 꿈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한국 내 혼혈인의 희망적 상징으로 통하는 인순이는 피부색으로 인해 겪었던 힘겨운 세월에 넌더리를 내며 15년 전, 미국에서 딸을 낳았다. "혹시 아이가 저를 많이 닮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던 거죠. 그래서 미국 시민권이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이민 갈 마음은 전혀 없었고요. 원정출산이라고 볼 수도 있죠. 아이를 낳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라디오에서 이런 사연을 전부 공개했어요. 청취자들에게 '마음껏 욕해 달라'고 했었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이었으면 꽤 논란이 커졌을 텐데…."
하지만 인순이는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급속도로 다문화 가정에 대해 마음을 열고 있어 안심이 된다"고 했다. 자신의 세월을 극복한 그의 관심은 요즘 오히려 아버지의 세월에 쏠려 있다. "어떻게 보면 본인과 상관없는 나라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분 아니냐?"며 "그런 측면에서 아버지와 동료들을 인정해줘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그는 최근 공군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군인의 딸' 자격으로. 이날 그의 마지막 한 마디에 수백명 군인들이 뒤집어졌다. "외국에 파병 나가도 책임지지 못할 씨는 뿌리고 오지 마세요." 인순이는 "저니까 할 수 있는 얘기"라며 입을 앙다물고 눈으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