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업아. 우리 가족은 아프리카 가나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러 가게 됐단다.”
“그럼 비행기 타는 거예요? 와! 신난다.”
1992년 1월 철없던 14세 소년은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로 갔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고국을 떠나 가나공항에 내리니 강렬한 태양이 작열했다. 문득 에이즈, 기아, 내전의 이미지가 뇌리를 스쳤다. 설렘 반, 걱정 반. 아프리카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서른을 넘긴 그가 한민족 기업인들의 축제인 제8차 세계한상대회 참석차 지난 주 인천 송도를 찾았다. 현지 언론으로부터 ‘가나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 15인’으로 선정된 최승업(32) 사장. 그는 통신업체 이토크&나나텔(E-Talk & Nanatel Limited)을 운영하며 연간 8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 가나에서 가장 성공한 청년기업가 최승업
최승업 사장은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 형, 누나와 장인까지 모두 목사다. 최 사장은 “젊은 나이에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것 역시 아프리카 선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최 사장의 부친은 아직도 가나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1999년 가나 레곤국립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 조그만 광고회사를 차렸다. 당시 가나는 TV 보급률이 낮은데다 방송광고료가 비싸 옥외광고 수요가 많다는 것에 착안한 것. 광고회사를 운영하며 종잣돈과 경험을 쌓았다.
2000년대 들어 가나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자 최 대표는 이동통신 사업에 주목했다.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휴대폰 요금을 충전해 쓸 수 있는 선불카드를 내놓아 대박을 터뜨렸다. 파라솔을 이용한 ‘노천(露天) 1인 점포’도 현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투자비가 많이 드는 점포 대신 직원 1명이 길거리에 파라솔과 테이블만 놓고 휴대폰과 선불카드 등을 파는 형태였다.
그는 현지 직원들을 교육하는 일에 가장 큰 신경을 썼다. 아무래도 한국인처럼 사고나 행동이 민첩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직원들과 같이 먹고 마시며 소통했다. 최 사장은 ”덕분에 저와 오래 일한 직원들은 매우 부지런해졌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이동통신 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27개 대리점, 직원 1000명, 연간 매출이 800억원에 이르는 통신회사를 일궜다. 현지 언론은 이미 3년 전, 29세였던 최 사장을 ‘가나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의 반열에 올랐다.
◆ 불모지 아닌 기회의 땅, 아프리카
최 사장은 “현지인들과 함께 자라며 그들과 같은 언어와 생각을 공유하게 됐다”며 현지 적응을 사업성공의 첫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이제 아프리카 가나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는 “나를 키워준 곳”이라며 시종 아프리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팥밥에 매운 고추소스를 넣고 손으로 비벼먹는 ‘와채’라는 가나 음식을 제일 좋아합니다. 한국에 오니 자꾸 아프리카 음식이 생각나는데요."
가나의 열악한 교육환경 탓에 외국인들은 주로 국제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최 사장은 현지인들이 다니는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현지 교포 자녀들이 고국이나 영미권 대학으로 떠날 때도 그는 가나 레곤국립대에 들어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기왕 가나에서 살 거라면 현지인들과 똑같이 지내자는 것이 최 사장과 가족들의 생각이었다. 지난해 그는 대학 후배인 한국 교포와 결혼도 했다.
“지내고 보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습니다. 아프리카는 세계에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걱정하는 치안과 정치도 안정적이라고 최 사장은 설명했다.
“매일 밤 직접 운전하며 돌아다녀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정치는 이미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몇 차례 이뤄졌을 정도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쟁(政爭)은 한국이 심하지 않은가요?”
최 사장은 가나를 비롯한 서아프리카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가나의 인접국 나이지리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세계 7위)의 산유국이자 인구 1억 3000만을 보유한 매력적인 시장이다. 인구 2300만명에 불과한 가나에 비해 훨씬 큰 시장이다.
유전개발 사업을 구상하던 그에게 나이지리아의 중견 에너지 개발기업 ‘MTI 오일&가스’사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최 사장은 올 초 이 회사 사업개발부 임원을 맡아 가나와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일하고 있다.
“현재 중국과 인도가 아프리카의 거대한 자원을 선점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자원 채굴 기술을 갖췄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해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 한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교두보 역할 희망
최 사장의 마음속에는 고국에 대한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7월 그의 척수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조금만 더 방치했으면 하반신이 마비될 뻔했다. 아프리카의 의학기술 수준으로는 손을 댈 수 없었다. 급히 귀국해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고나서야 건강을 되찾았다.
“나이지리아나 가나사람이었으면 하반신을 잃었겠죠. 조국이 제 두 다리를 돌려줬습니다. 이토록 발전한 한국이 어찌나 자랑스럽고 고맙던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실감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전문가로서 한국기업의 현지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다짐했다. 최 사장은 “45세쯤 되면 사업에서 손을 떼고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