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옆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부지가 현대미술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 초 종로구 소격동 기무사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이 처음 자체 기획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 제목은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의 《신호탄》이다.

지난달 22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기무사의 어두웠던 과거를 걷어내고 2012년 완공 예정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디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전시는 ▲미술관 프로젝트 ▲공간 변형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등 세 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구분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통(과거)과 현재, 앞으로의 비전이라는 관점에서 즐기면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신호탄》전(展)에 나온 강애란의 작품〈숭고-헤테로토피아의 공간〉.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관을 세울 옛 기무사 부지에 처음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준다.

본관 1층에서는 박서보·김창열·윤명로 등 원로작가들의 작품이 30년 전과 지금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작가들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옛 기무사 조사실이 있던 건물 지하에 내려가면 으스스한 복도 끝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를 만난다. 릴릴의 영상 작품 〈침묵의 폭포〉로, 지하공간으로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 기무사의 무거운 어둠을 걷어내고 정화(淨化)한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최우람의 〈비밀의 추〉는 멀리서 보면 흔들리는 전등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기계 동물'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날카로운 쇠로 된 가시를 세우고 있다. 기무사의 은밀한 비밀을 에너지로 먹고사는 생물로, 기무사를 아이로니컬하게 표현하고 있다.

황란의 작품 〈비우고 떠나다〉는 화려한 새들의 모습에 잠시 황홀해진다. 봉황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자태를 뽐내지만 실제로는 창살 안에서 피 튀기는 권력 투쟁을 암시하고 있다. 권력이란 가장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 헛된 욕망임을 말해준다.

강애란의 〈숭고-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공간〉은 책을 주제로 한 가상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Hete-rotopia'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말한다. '디지털 북' 시리즈의 하나로, 사이버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책의 세계를 보여준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상쾌한 공기와 함께 최정화의 설치작품 〈총,균,쇠〉를 만난다.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확 트인 공간에서 멀리 인왕산을 볼 수 있다. 옛 기무사 공간 곳곳에 배인 역사의 흔적에 짓눌려 있다 빛과 함께 풀려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현대미술의 여러 장르가 한자리에 모였고, 생활과 예술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휴식 공간은 디자인 작품으로 구성돼 있고, 야외휴게실은 안규철의 〈기무사 카페〉란 이름의 작품이다. 아늑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공간으로, 일반인에게 다가가는 옛 기무사의 변신을 상징하고 있다.

《신호탄》전은 58명 작가의 300여점 작품이 선보여, 그동안 다양하고 급속하게 분화하고 발전해 온 한국 현대미술의 풍부함과 가능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 새로 지어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기대하게 만든다. 다만, 전체 기무사 부지 중 국군서울지구병원을 제외한 곳에서 열려 전시 공간이 단절된 아쉬움이 있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휴관 없이 열린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평일은 오후 6시, 금·토·일은 오후 9시까지 연다. (02)2188-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