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째 주 어느 날, 사무실로 앳돼 보이는 한 남성이 찾아왔다. “10년째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번에 책을 한 권 썼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가 건넨 책의 제목은 ‘내 심장은 멈추지 않는 엔진이다’(국일미디어)였다. 교육사업가를 자처하는 이도, 책을 쓰는 이도 넘쳐나는 세상. 솔직히 그도, 그의 책도 별로 끌리지 않았다. 검토해보고 연락하겠노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책과 함께 받아든 명함엔 ‘파워스터디 대표이사 이준엽’이라고 쓰여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책은 그러나 상당히 재밌었다. 마흔도 안 된 나이에(그는 1971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서른아홉이다) 겪은 ‘산전수전’이 일단 흥미로웠고, 10년째 하고 있다는 교육사업의 면면엔 한국 사교육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포인트’가 여럿 눈에 띄었다. 뭣보다 이제부터 그가 해보려고 한다는 새로운 교육사업 구상이 획기적이었다. “내가 겪었고 해봤기 때문에 이런 얘길 할 수 있는 것”이란 자신감이 지면 곳곳에 배어나왔다.

11월 9일 오후, 산본 신도시 내에 있는 군포국제영어교육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군포국제영어교육센터는 군포시가 민간자본을 유치해 반반씩 예산을 대고 설립한 영어교육기관으로 지난 9월 29일 문을 열었다. 그는 현재 총공사비만 480억원에 이르는 이곳의 최고경영자(CEO)다. 그가 대표로 있는 파워스터디가 센터 운영업체 공개 입찰에 참여, 6년간의 운영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군포국제영어교육센터는 오픈 직후부터 지역 영어 사교육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지자체가 설립한 영어교육기관으론 전국 최초로 첫 달 수강생이 2000명을 넘어섰다. 9일 오후에도 센터는 수업을 듣기 위해 모여든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그에게 주문했다. “세상은 이준엽이란 사람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무하다. 나도 그랬고 독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얘길 직접 해봐라. 1인칭 시점으로 정리해 실어주겠다.” 다음은 그 과정을 거쳐 정리한 그의 스토리다.

#1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시각장애인의 아들
photo 이경민 조선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 을지로4가 신신안마원. 제가 어린 시절을 나고 자란 곳입니다. 제 아버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6·25전쟁 피란길에 걸린 눈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시력을 잃었고 생계를 위해 안마사 일을 시작하셨지요. 스물셋에 역시 시각장애를 지닌 안마사와 결혼, 이듬해인 1971년 절 낳으셨습니다. 그러나 생모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절 낳고 얼마 안 돼 아버지와 이혼 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어머니는 스물둘 꽃다운 나이에 처녀의 몸으로 아들 딸린 홀아비였던 아버지와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DJ와 통화하던 아버지의 사연을 접하곤 며칠 후 물어물어 아버지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늘 입버릇처럼 몸 불편한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던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결혼으로 그 소망을 이룬 셈이지요. 전 요즘도 라디오를 매개로 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떠올릴 때마다 부모님의 러브 스토리가 생각나곤 합니다.

대학 3학년 때까지 우리 가족은 33㎡(10평)짜리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부모님과 남동생, 외조부모님,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안마사까지 10명이나 되는 대식구였어요. 고기 반찬은 1년에 딱 두 번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날의 연속이었지요. 사춘기 땐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방황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 반에서 1~2등이었던 성적이 고1 1학기 중간고사 때 20등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성적표를 받던 날 어머니는 처음으로 내게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되겠구나!’ 그날 이후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2 ‘이젠 영어교육!’
해외출장 중 사업 아이디어

Corea KYSS. 고교 시절, 제겐 꿈이 있었습니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큰 기업체를 제 손으로 일구겠단 꿈이었지요. KYSS는 제 이름 ‘기엽’에 아버지의 안마원 이름 ‘신신’을 붙인 ‘기엽신신’의 영문 이니셜이었습니다.(지금의 이름 ‘준엽’은 훗날 파워스터디를 창업하며 개명한 것입니다.) Korea가 아니라 Corea라고 표기한 건 우리나라가 일본(Japan)보다 앞서길 바라는 맘에서였습니다. 그래서 고무지우개를 파내어 ‘Corea KYSS’를 새긴 후 도장처럼 찍고 다녔습니다. ‘한국카이스 그룹’을 향한 제 긴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학(한양대 경영학과)을 졸업한 후 학군장교로 임관해 백마부대에서 소대장과 본부중대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이후 삼성물산 공채사원으로 입사했고,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엔 당시 국내 투자 규모를 늘리며 공격적인 경영을 하던 프랑스계 유통회사 까르푸 경력사원 모집에 응시해 ‘유통업의 꽃’으로 불리던 대형마트 구매 바이어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출범과 함께 위성방송 시대가 열리자 다시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KBS미디어가 주축이 된 게임전문 위성방송사 SKY겜티브이로 직장을 옮긴 겁니다.

SKY겜티브이에서 제가 맡은 업무는 해외마케팅이었습니다. 중국·대만·일본 등 아시아는 물론, 프랑스·독일·영국 등 유럽 국가의 위성방송사들과 제휴를 맺기 위해 해외출장을 밥먹듯 다녔습니다. 2000년 중국에 첫 출장을 갔을 때 일입니다. 직업상 호텔에서 현지 위성방송을 보고 있는데 거의 모든 주요 채널에서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아침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더군요. 세계화시대를 앞서 준비하려는 중국의 야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영어교육이 화두가 될 거란 직감이 왔어요. ‘그래, 첫 번째 사업 아이템은 영어교육이다!’라고 생각했지요.

#3 영어비디오 사업으로 시작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입성

2001년, 꿈에 그리던 창업을 했습니다. 아이템은 중국 출장 때부터 염두에 뒀던 영어교육 비디오 사업이었어요. 그때 전 만 30세 생일을 앞둔, 세 식구의 가장이었습니다. 손에 쥔 종잣돈은 아내가 어렵게 마련해준 2000만원이 전부였고요. 그 돈에 까르푸 시절 알게 된 거래처 사장, 대학원 선배 등의 도움을 보태어 총 1억1000만원의 자본금으로 회사를 차렸습니다.

당시 영어교육 비디오 부문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던 콘텐츠는 교육방송(EBS)의 ‘방귀대장 뿡뿡이’ 시리즈였습니다. 전 반드시 EBS와 손잡고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유아 대상 캐릭터였던 뿡뿡이의 후속주자로 유치원 연령대를 공략한 토종 캐릭터 ‘뚝딱이’를 선택했습니다. 사업계획서를 만든 후 무작정 EBS 사업팀을 찾아갔지요. 첫 방문 땐 완전히 찬밥 신세였습니다. EBS로선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름도 못 들어본 신생업체와 공동사업을 벌일 이유가 없었던 거지요. 그러나 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찾아가 담당자를 설득, 결국 2002년 공동사업자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영어비디오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현장 영어교육 사업에 대한 갈증이 생겼습니다. 마침 초등 영어교육 붐이 불면서 조기 영어교육 시대가 열렸습니다. 당장 영어학원 사업 준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해외 유명 콘텐츠를 그대로 들여온 학원, 재벌급 기업이 출시한 국내 브랜드를 달고 운영되는 학원이 즐비한 영어교육 시장에서 저 같은 ‘초보 사업가’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습니다. 1년여의 준비 끝에 가까스로 2003년 7월, 영어학원 운영을 위한 신규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사교육 1번지’라고 불리는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였습니다.

#4 ‘사교육 특구’ 세 곳 접수
‘부자만 위한 교육’에 회의

2004년 2월, 우여곡절 끝에 W어학원을 개원했습니다. 외국인학교 이상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월 수강료가 100만원이 넘는 고급학원이 돼버렸습니다. 제 아들과 지인의 아이들까지 합쳐 고작 십수명의 수강생으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입소문을 타자 수강생은 급격히 늘었습니다. 이듬해엔 분당 신도시에, 그 다음 해엔 송파구에 각각 2호점과 3호점을 오픈했습니다. 창업 3년 만에 사교육 특구 세 곳을 아우르는 학원 경영자가 된 겁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믿었던 동생이 공금을 유용해 곤경에 빠진 적도 있고, 우연히 TV프로그램의 전파를 탔다가 연출진의 악의적 왜곡으로 학원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맘고생도 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수면 무호흡 증상으로 한동안은 우울증약과 위염약을 달고 살았습니다. 대치동 1호점이 적자 신세를 벗어난 건 설립한 지 2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분당점까지 흑자로 돌아서던 날, 그간의 고생이 북받쳐 올라 혼자 한강변에 차를 세우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힘들게 일군 학원사업을 왜 접었냐고요. 계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학원 앞에서 등하원 지도를 하는데 한 초등생이 우리 학원생들을 보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누군 좋겠다. 부모 잘 만나서….” 심한 충격과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결국 내가 하는 일은 극소수 부자들만을 위한 고급교육에 불과하단 걸 그때서야 깨달은 거지요. 어렸을 적 품었던 꿈과는 너무 동떨어진 지금의 제 모습이 문득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서둘러 제가 가진 지분을 다른 투자자에게 전부 넘긴 후 학원사업에서 손을 뗐습니다. 그리고 나서 차린 회사가 파워스터디입니다.

#5 사교육이 문제라고?
사교육비에 낀 거품이 문제!

우리나라 사교육비 지출 규모가 세계 1위인 건 다들 알고 계시지요. 올해는 30조원에 육박할 거란 예측도 나오더군요. 그런데 그중 75~80%는 영어 사교육비에 몰려 있단 것도 아시나요. 입시교육의 상당수는 저비용 구조로도 가능한 이러닝과 교재시장으로 소화가 되지요. 반면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영어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입니다. 제가 그 시장에 있어봐서 알아요.

교육사업이 발달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순 없습니다. 마약사업이나 향락사업보다야 교육사업이 훨씬 고무적이지요. 결국 문제는 사교육도, 교육사업도 아닙니다. 교육에 끼어있는 거품이 진짜 문제입니다. 요즘 강남에서 웬만한 영어학원을 하나 열려면 인건비를 제외하고 딱 10억원이 듭니다. 프랜차이즈 가맹비와 임대보증금, 권리금만 합해도 그 정도지요. 10억원을 들여 학원을 지은 원장들이 어디서 그 돈을 뽑겠습니까. 수강료밖에 없어요. 월 100만원짜리 수업이라고 해도 콘텐츠의 질은 결코 그만큼의 수준이 될 수 없는 구조인 겁니다.

제가 학원 세 곳을 운영할 때 매달 건물주에게 바치는 돈은 월 7500만원, 연 10억원이었어요. 이런 기형적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사교육비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엉뚱한 데 나가는 돈을 줄이는 대신 그중 일부를 양질의 콘텐츠 공급에 사용하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는 자연스레 정상화됩니다. 제가 교회나 지방자치단체의 빈 공간 활용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어요.

#6 파고다그룹 등과 제휴
12월 성남교육센터 건립

우리나라 교회 대부분엔 교육관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인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진 텅텅 비어 있기 일쑤지요. 교회 건물은 대개 동네 목 좋은 곳에 들어서게 마련이고, 규모가 큰 곳일수록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이런 곳을 교육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면 사교육비에 포함되는 임대료 거품을 덜어낼 수 있어요. 여기에 품질이 검증된 콘텐츠까지 저가로 들여올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요.

전 이번에도 예의 ‘맨땅에 헤딩’ 기질을 발휘해 총자산 1조원 규모의 파고다어학원을 찾아갔습니다. 콘텐츠 제휴를 의논하기 위해서였지요. 처음엔 설립자인 고인경 이사가 고교(양정고) 선배란 점에 착안했지만 실무자에게 제 교육철학을 설득하고 손을 잡기까진 꼬박 6개월이 걸렸습니다. 그 노력 덕분에 파워스터디는 파고다어학원과 5 대 5로 합작, ‘PS글로벌’이란 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PS글로벌은 파고다어학원의 5개 계열사 중 본사가 지분을 100% 소유하지 않은 첫 번째 회사가 됐고요.

오는 12월이면 경기 성남에 위치한 성남제일감리교회 내에 성남국제교육센터가 문을 엽니다. ‘우수 콘텐츠와 교회 유휴공간의 결합’이란 제 생각이 처음으로 결실을 맺는 거지요. 이제 시작이지만 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상(濫觴)이란 고사성어가 있어요. 술잔 하나 겨우 넘칠 정도의 작은 물줄기란 뜻입니다. 중국 양쯔강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아주 작은 물줄기에 이른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라더군요. 제가 하는 일도 지금은 비록 남상에 불과하지만 언젠간 양쯔강처럼 거대한 강을 이룰 거라고 믿습니다. 다만 그게 가능하려면 수많은 지류들이 더해져야겠지요.

#7 정원 10% 저소득층 무료혜택
1년 안에 30곳 설립 목표

군포국제교육센터와 성남국제교육센터 두 곳의 수강료는 월 15만원 수준입니다. 1개월 기준 24교시 수업, 16명 정원, 원어민강사 수업, 100% 전자칠판 도입 등을 감안하면 여느 학원의 절반 수준입니다. ‘수강정원의 10%는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무료로 지도한다’는 원칙도 세웠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제 뜻에 공감하는 파트너가 늘어 ‘규모의 경제’가 갖춰지면 수강료는 더 내려갈 수 있을 겁니다. 향후 1년 내에 군포·성남 같은 곳을 30곳쯤 더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전 중학교 때까지 시각장애인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미국인 양부모로부터 당시 월 1만원가량의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책도 사보고 학비에도 보탰지요. 감사의 마음을 담아 1년에 두 번쯤 양부모에게 편지를 쓰곤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도움에도 누군가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단 걸 그때 체험했지요. 교육사업에 대한 제 소신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받은 걸 돌려줘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게 있어요.

요즘 취업난 때문에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많다지요. 하지만 스스로의 노력 없이 나라 탓, 대통령 탓만 하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해외시장을 뚫기 위해 출장을 다니던 10년 전, 한국을 아는 이들은 정말 극소수였습니다. 그나마도 ‘중국(일본)의 속국’ 정도 취급을 받기 일쑤였지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환경이 좋습니까. 사업 아이템도, 활동무대도 무궁무진해요. ‘코리안 드림’을 위해 한국 땅을 밟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정작 우린 “한국은 비전 없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란 말이 있습니다.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적 힘을 의미하는 용어지요. 전 남들보다 회복탄력성이 큰 편이라고 자부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로지 제 노력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왔기 때문입니다. 불우했던 제 환경이 오히려 제게 근성을 선물한 거지요. 따지고 보면 회복탄력성을 갖춘 이들이 모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게 아닐까요. 뻔한 말 같지만 지금의 젊은이들도 쉽게 좌절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 다음 책에선 한국인, 특히 한국 젊은이의 꿈에 관한 얘길 하고 
싶습니다.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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