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을 한 지 오래됐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소외계층에 속하는 탈북자임을 느끼게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도망자였던 나를 편견없이 다정스레 대해 주었던 사람, 바로 나에게 머리를 깎아달라고 부탁하던 파란 눈의 찌모페위치 할아버지다.
1993년 1월 러시아 극동 연해주의 북한 벌목장에서 탈출한 나는 북한 당국이 상시 운영하던 체포조의 추적을 피해 3일 만에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그 뒤 북한 체포조의 위험에서는 벗어났지만 처음에 목적했던 러시아 정착은 어려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적 취득은커녕 언제 붙잡힐지 모른다는 불안만 엄습해왔다. 멀리서 경찰이 나타나면 공포와 불안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러시아 정착을 포기하고 남한으로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건설업을 하는 고려인(재러 한국인) 밑에서 일하기로 하고 숙소도 얻었다.
고려인 사장이 마련해준 허름한 숙소는 자그마한 방 두 칸과 수돗물까지 나오는, 나에게는 꽤 근사한 빈집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넘어갈 듯 기울고 절반이나 떨어져 나간 집이었지만 오히려 남들 눈을 피하기 좋아 마음에 쏙 들었다.
낮에는 시내 중심에 있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현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일했다. 숙소에 돌아오면 수프를 대충 끓여 흘레브(러시아 빵)로 저녁을 먹고 침대에 드러누워 온갖 상념에 시달리는 것이 일과였다. 비가 내리던 어느날 작업장에서 일찌감치 퇴근해 있는데 웬 노인이 창문을 두드리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길 건너 이웃에 사는 찌모페위치 노인이었다. 그는 고려인 사장으로부터 짓다만 벽돌집과 건설자재를 지키는 경비 일을 맡아 숙소 집을 하루 한 번씩 들러보곤 했는데 그날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누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만 찌모페위치는 괜찮다며 기어코 들어왔다. 찌그러진 야전용 접이식 침대와 깨끗하지 못한 이불 한 개, 슈바(러시아의 두툼한 겨울외투) 그리고 판자를 주워 만든 식탁이 전부였다. 식탁 위에는 로조사전(러한사전)과 그릇 몇 개, 전기곤로가 놓여 있었다. 내 생활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만이 다를 뿐 '비취'나 다름없었다. '비취'란 러시아에서 계절따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몇 푼 쥐면 술만 퍼마시는 주정뱅이를 말한다.
찌모페위치는 젊어서 장거리 화물트럭 운전수로 일하다 퇴직 후 혼자 살고 있었는데 가끔 그의 아들이 집에 들렀다. 1993년 당시는 구소련이 붕괴된 지 얼마 안 되어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은 상점에서 파는 티셔츠 한 개 값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집은 내 숙소에 비하면 궁전이었다. 그는 허름한 내 숙소를 자주 찾아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 듣기를 무척 좋아했다. 내가 탈출한 이유를 설명하면 의아해하다가도 스탈린식 정치 때문이라고 하면 금방 머리를 끄덕이며 이해해 주었다. 어느샌가 나는 찌모페위치와 아주 오래 사귄 친구처럼, 허물없는 이웃이 되었다.
어느 일요일 나는 무료함도 달랠 겸 숙소에서 혼자 머리를 깎고 있었다. 벌목장을 탈출한 후 이발소에서 이발한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러시아 말을 잘 못하기도 했지만 공공 장소에 갔다 의심을 받아 경찰에 고발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조각 거울에 머리를 이리저리 비추며 깎고 있는데 찌모페위치가 창문을 두드리다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내가 손수 머리를 깎는 것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자세히 살피더니 대뜸 자신의 머리도 깎아달라며 들이밀었다.
"니체보, 니체보…뜨이 오첸 하랴쇼!"(괜찮아, 괜찮아…당신 아주 좋아!)
내가 서툴다며 사양했지만 그는 괜찮다며 막무가내였다. 나는 벌목장을 탈출한 후 3개 나라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여러 민족의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였다. 하지만 신분도 확인되지 않은 도망자에게 선뜻 머리를 깎아달라고 부탁하기는 쉽지 않는 일이었다. 찌모페위치는 금발이 드문드문 섞인 아주 부드러운 백발이었다.
한국으로 가기 전날 찌모페위치는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그동안 호의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니 훗날 카자흐스탄 하면 "아! 거기에 찌모페위치가 살고 있었지!"하고 기억해 달라고 했다. 자신이 만들었다며 흘레브도 큰 것 하나를 싸주며 눈물을 글썽였다. 특별함이 없는 찌모페위치는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던 평범한 러시아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 천만이 넘는 거대 도시 서울에서 살면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이제는 한국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편하다. 그러나 탈북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상대의 표정 변화를 읽게 될 때면 내 가슴엔 금이 간다. 반세기 넘는 분단이 서로의 무의식 속에 심어놓은 벽이다. 그때마다 찌모페위치도 생각나고, 통일이란 참 어려운 것이구나 느껴진다. 아마도 우리는 통일이 돼도 또 다른 마음속 분단 시대를 거쳐야만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어깨가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