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쉬어야 큰 일도 할 수 있는 법이지요. 프로야구 스타들이 1년 중 유일하게 마음놓고 쉴 수 있는 계절. 이 황금같은 시간을 그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체험'을 즐기는 스포츠조선 야구 기자들이 이번엔 선수들과 함께 '놀아 보기로' 했습니다. 프로야구 스타들에게 자신이 요즘 가장 즐기는 취미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찾아가 그 취미를 함께 즐겨봤습니다. '노는' 모습에 선수의 캐릭터는 물론 야구관까지도 투영됩니다. 자, 이제부터 프로야구 스타들과 함께 취미생활을 즐겨 보시죠.



< 스포츠팀>







이 덩치에 로봇 조립 웃기죠?
운동 끝나면 방에 박혀 3~4시간 몰두

작품 완성땐 자식 탄생 시키는 기분

다음 목표는 피아노치기 어울리나요?

"이 덩치에 이것 만지고 있으니깐 웃기죠?"

다 큰 프로야구 선수가 프라모델 조립을 한다? 처음에 히어로즈 황재균으로부터 취미가 프라모델 조립이라는 얘기를 듣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올시즌 붙박이 3루수로 시즌 전경기에 출전하며 18홈런-30도루를 기록한 1m83, 90㎏의 거구가 세밀함과 차분함이 요구되는 이 취미와는 좀처럼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 물론 프라모델 조립이 어린이들 보다 사실 성인들의 '고급 취미'로 상당히 보급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프로야구 선수의 취미로는 여전히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최근 '스타 골든벨'에 출연해 깔끔한 외모로 인기를 끌었던 황재균을 16일 목동구장에서 만나 취미인 프라모델 조립을 함께 해봤다.

▶장인이 따로 없다

비록 오프시즌이기는 하지만 황재균은 오전과 밤에 트레이너를 고용해 헬스장에서 개인 체력 훈련을 하고 낮에는 목동구장에 나와 기술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몸이 재산인 프로야구 선수라 담배는 아예 안하고 그나마 많이 마시지 않던 술도 석달째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심심하지 않을까? 황재균은 "저 취미 많아요"라며 절대 아니란다. 이날처럼 목동구장 체력단련실이 문을 닫으면 방에 틀어박혀 3~4시간 동안 혼자 즐기기에 가장 좋은 취미는 프라모델 조립이란다.

일곱살 때까지 외갓집에서 살면서 남자 형제 없이 지냈을 때 어린 황재균에게 최고의 소일거리는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것. 비행기나 배를 주로 조립했다. 그러다가 야구를 하면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잠시 이를 끊고 살았지만, 지난해 오프시즌부터 다시 추억의 나래를 펴고 있다고 한다. 요즘 관심있는 모델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건담 시리즈다.

이날도 준비해온 것은 일제 건담 모델. 공구함을 정성스레 옆에 놓은 후 부품이 든 비닐봉지부터 차분히 뜯기 시작하더니 일본어로 쓰여진 설명서를 폈다. "일본어요? 몰라도 돼요. 그림만 보고 순서대로 잘 따라하면 되죠." 고수의 내공이 확 느껴진다.

펜치로 부품을 하나하나 끊어낸다. 그런데 펜치날의 면과 부품면을 일치시켜 깔끔하게 자르기 위해 손에서 수시로 펜치 방향을 바꾼다. 어렸을 적 손으로 돌려가며 부품을 뜯어냈던 기자로선 낯설고도 어려운 '테크닉'.

시작하기 전 황재균이 "화장실도 안가고 2~3시간 꼬박 앉아서 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며 물었을 때 쉽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 실수였다. 황재균은 오는 전화도 마다하고 정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조립만 한다. 옆에 앉아서 함께 조립하다보니 좀이 쑤신다. 황재균이 상반신 부분 조립 도중 잘못 끼운 부품을 빼다 살짝 부러지자 울상을 짓는다.

중요 부위는 황재균이 전담해서 조립했는데 1시간여 지나자 상반신과 다리가 완성됐다. 핀셋으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스티커도 기막히게 붙였다. '장인 정신'마저 느껴진다. 골반 부분을 조립하고 뒤에 붙은 포신 부분까지 조립을 끝내자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화장실 한번 안가고 정성스레 또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킨 황재균은 "다 했다"라며 만세를 불렀다. "아직 결혼은 안했지만, 자식을 하나 탄생시키는 기분"이라며 싱글벙글인 황재균은 "혹시 오타쿠(외부와 단절한 채 특정 취미에만 몰두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아닐까요? 그냥 순수 취미 활동으로 생각해 주세요"라며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프라모델 조립을 하다보면 집중력이 좋아진다는 것이 황재균의 생각. 강습 타구가 유난히 많은 3루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더욱 필요하다고. 황재균은 "그런데 사람들이 이 얘기 들으면 너무 억측이라고 놀리지 않을까요?"라며 피식 웃었다.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걱정

그렇다고 프라모델 조립만 취미가 아니다. 볼링과 스키를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다.

볼링을 칠 때는 13파운드의 공을 쓰는데, 소문난 강견답게 스핀을 주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공을 뿌린다. 너무 세게 굴려 핀이 깨지는 소리가 나서 민망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단다.

스키도 지난 시즌부터 즐기기 시작했다. 실력이 꽤 늘었지만 절대로 초급 코스를 벗어나지 않는다. 친구를 따라 중상급 코스로 올라갔다가 조금이라도 다쳐선 안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고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 때 잠시 운동을 쉬고 친구들과 스키장을 찾기로 했단다.

다음 목표는 피아노 치기. 이 역시 야구 선수와는 잘 어울려보이지는 않는다. 황재균은 "어렸을 때 체르니 40번까지 쳤는데 다 까먹었어요. 몇 년 후 팀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재균은 지난달 '스타 골든벨'에 톡톡 튀는 입담과 깔끔한 얼굴, 능글맞은 끼로 나름 예능감을 뽐내기도 했다. 그래서 알아보는 여성팬들이 더욱 많아졌다고. 당시 프로그램 관계자들로부터 "방송할 생각 없느냐"라는 제의까지 들었다는 황재균은 "내게는 지금 야구가 전부죠. 한 마흔살쯤 돼서 기회가 된다면 '예능 늦둥이'로 받아달라고 부탁했어요"라고 농담을 했다. 황재균에게 취미는 어디까지나 취미 일뿐이다.

<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