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이다. 연세대 1학년이던 서장훈과 우지원은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를 갔다온 뒤 홀연히 사라졌다. 우지원은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훈련이 독했고, 엄격했다. 견딜 수 없었다"며 팀 이탈 당시를 회고했다. 열흘동안 훈련을 불참한 채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경은은 "최희암 감독이 (이)상민이와 나를 훈련시키지 않고, 장훈이와 지원이의 집으로 가 설득하라고 했다"고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장훈은 "그때 형들이 번갈아 집을 찾아왔던 것 같다. 설득하기 보다는 같이 놀다가 갔다"고 웃었다. 이상민은 "우지원은 그때 아버님이 농구 그만두게 하고 모델을 시킨다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둘은 팀 이탈 열흘 만에 다시 코트로 왔다. 그리고 문경은은 "내가 둘이 복귀한 뒤에 '빠따'를 번갈아 때린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런 얘기를 해도 되냐'고 하자, 문경은은 "뭐 그때는 다들 그렇게 했는데"라며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약속이나 한 듯 올해 '오빠부대의 원조'였던 '농구계의 전설'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문경은(SK), 이상민(삼성), 우지원(모비스)이다. 그들은 17일 서울 목동의 스포츠조선 본사로 찾아왔다. 연세대 시절의 추억, 실업팀으로 옮길 때의 비화, 아쉬운 현역 시절과 지도자로서 앞으로의 미래 등 현역 시절 차마 하지 못했던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술술 털어놨다. |
"팀 이탈 장훈-지원 복귀 뒤 '빠따'때렸죠" |
#1 첫인상
▶류동혁 기자(이하 류) : 일단 서로 너무 잘 아니까 첫 만남과 상대에 대한 특별한 인상을 얘기해 주세요.
우지원(이하 우) : 경은이 형은 알다시피 분위기 메이커에요. 코트 안팎에서 너무 시끄러워요.(웃음)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슈터입니다. 제가 중 1때 형이 광신중 3학년이었는데 그때도 워낙 잘한다고 소문이 났었어요. 직접 봤는데 중학생이 무슨 대학생처럼 점프슛을 쏘더라구요. 나도 슈터의 길을 가야하니까 많이 배웠고, 라이벌 의식도 있었죠. 이겨보려고 하루에 1000개 이상의 슛을 쐈죠.
이상민(이하 이) : 어깨에 쥐났었겠다. 하하
문경은(이하 문) : 역시 체육관 있는 학교는 다르구나.(당시 우지원의 경복고만이 실내체육관이 있었단다) 상민이는 정말 내가 함께 뛰어보고 싶었던 후배였어요. 제가 중 2때 1m80이었는데, 소년체전 예선때 홍대부중에 나 반토막만한 애가 있더라구요. 그게 이상민이었어요.
이 : 1m54. 당시 내 키였어요.
문 : 드리블하기도 버거워하는 것처럼 그랬어요. 당시 광신중이 용산중하고 워낙 잘 나가니까 완전 무시했어요.
이 :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그때 우리가 이겼지 아마.
문 : 에휴. 청소년대표 같이 하면서 제가 연세대에서 뛰고 있을때 상민이가 우리 팀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전창진 감독이 우리가 FA 계약으로 힘들어하니까 "다들 동부로 모이는게 어때"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제 농구인생에서 가장 잘 맞는 친구같은 후배에요.
이 : 지원이는 뭐든지 열심히 해요. 1학년 때 워낙 잘 생겼어요. 완전 귀공자 스타일이었죠. 한때 연예계 쪽에서도 많이 러브 콜이 있었으니까. 근데 너무 성실하더라구요. 그리고 성격이 너무 털털해요. 별명도 '된장', '엽전' 뭐 이런건데, 모두 다 경은이 형이 붙였죠.
문 : 당시 지원이 얼굴은 화장실에서 X도 안 쌀 것 같이 깔끔한 인상이었어요. 근데 외모에 비해 행동하는 게 너무 소탈했어요. 그래서 이 인간 봐라고 하면서 좋아졌죠.
#2 대학시절
▶류: 당시 연세대는 최희암 감독의 지옥훈련이 유명했는데, 어느 정도였나요.
이 : 당시 저는 고려대를 가기로 돼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연세대로 진학하게 됐어요. 대학 가면 성인이고 어느 정도 자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숙소 보고 생활하면서 완전히 맛이 갔어요. 고교때보다 더욱 엄했고 운동하는데 회의를 느끼기도 했어요. 그래서 1학년 땐가 "운동 그만두겠다"고 아버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아버님이 "그래라"고 쿨하게 얘기하시는 거에요. 이상하게 그때부터 농구를 그만둔다는 생각이 싹 없어졌어요.
우 : 대학에 진학하면 출퇴근하는 줄 알았는데, 숙소생활을 하는거에요. 당시 최 감독님이 토요일 외출을 보내면 술 마신다고 일부러 오전, 오후 운동하고 늦게 보내주시고. 1학년 때는 일요일 아침 10시에 들어와서 숙소 대청소하고. 훈련은 너무 강하고, 자유도 없고 하니까 완전히 죽을 맛이었어요.
문 : 저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때만 해도 맞으면서 농구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근데 최 감독님이 그렇게 잡아주셨으니까 연세대가 잘 나간 것 같아요.(이상민 우지원 두 선수 모두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리고 내가 4학년 때 전력이 제일 좋았지요. (서)장훈이가 들어오고 이상민, 우지원, 김 훈, 김재훈 등이 있었으니까. 근데 당시 장훈이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대표팀에 왔다갔다하면서 실력이 금방 늘더라구요. 장훈이가 대표팀 막내 시절 볼을 책임지고 들고 와야 하는데, 버스 출발할 때면 다급하게 "형 볼을 안 들고 왔는데요" 그래서 야단 많이 맞았죠.
#3 프로&대표팀
▶류 : 프로팀에서는 세 선수가 단 한번도 함께 뛴 적이 없었네요.
이 : 뛰기가 쉽지 않았죠. 입단할 때 팀이 창단되면서 뿔뿔히 흩어졌으니까. 전성기에는 연봉 때문에 같이 뛸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았어요. 그래서 대표팀에서 같이 논 기억이 많아요. 특히 1997년 사우디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이 기억에 남아요.
우 : 그때만 해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는 게 정말 영광이었어요. 3학년 때인가 국가대표로 뽑혔는데,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가슴이 찡하더라구요. 근데 요즘은 대표팀되는 걸 꺼리는 분위기여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이 : 네이버에서 농구같은 게 축구, 야구와 비교할 수 있냐는 반응을 봤는데 충격이었어요. 국가적으로도 관심이 많고, 축구는 대표팀에 가면 몸값이 오르니까. 우리도 시스템을 빨리 정비할 필요가 있어요.
▶류 : 그러고 보니 올해는 월드컵이 열리네요.
문, 이, 우(모두) : 월드컵은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행사니까, 이번에도 잘하고 왔으면 합니다. 2002년 4강 신화가 기억이 납니다. 농구인 입장에서 부럽기도 합니다. 이제 축구대표팀처럼 농구대표팀도 좋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은퇴&지도자
▶류 : 이제 현역생활을 접는데요. 아쉬움이 많은 은퇴였습니다. 은퇴를 결심한 이유와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나요.
이 : 다 지났으니까 이제는 아쉬움은 없어요. 근데 은퇴하기 전에는 농구를 28년 하면서 정말 제 마음껏 마지막 1년을 불사르고 싶었어요. 그렇게 못 하고 떠나는 게 조금 걸려요. 가족을 먼저 생각하니까 은퇴 결정하기가 쉬웠어요. 선수생활 하면서 많은 감독, 코치님들이 많이 힘들어하는데, 저도 많이 고민하고 배워서 다시 오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제가 감독이 된다면 딱 하나 해보고 싶은게 있어요. 예전 선수생활 때 낮에 너무 더우면 스트레칭을 할 때 잠이 그렇게 오더라구요. 제가 감독이 되면 선수들에게 코트에서 낮잠시간을 주고 싶어요. (이상민의 눈은 홀가분해보였다. 지도자의 길을 떠난다는 설레임과 각오도 서려있었다. 이상민은 오는 8월 미국 뉴저지로 미국유학을 한다. 2년 뒤 돌아올 예정)
문 : (우지원과 이상민을 가르키며) 사실 얘네들 역할이 컸어요. 둘이 모두 은퇴한다고 하니까 나이 많은 나는 자동적으로 떠나야 하는 게 대세처럼 느껴졌어요.(물론 농담이었다.) 우승을 못해 가장 아쉽고 올해 정말 여한없이 뛰었어요. (방)성윤이가 부상당해 시즌 막판 20~30분씩 뛰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제일 하기 싫었던 게 벤치에서 앉아있다가 경기 끝나면 가고, 또 벤치에 앉아있고 이런 것이었어요.
우 : 형 나는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내내 밖에서 몸 풀다가 끝났는데.(모두 웃었다)
문 : 올 시즌 끝나고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SK가 5년 동안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아쉽네요.
우 : 올해 은퇴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주위에서 현역 최고령인 (이)창수형도 나보고 '몸관리를 잘하니까 내 기록을 깰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마흔까지는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팀이 통합우승하면서 은퇴의 적기가 왔어요. 아내와 얘기를 많이 하면서 이럴 때 은퇴를 해야할 것 같다고 결심했습니다. FA로 풀리면서 몇 군데 원하는 구단도 있었는데, 저는 모비스에서 은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력분석 일을 하게 되는데 얼마 전에도 대학농구를 보고 왔어요. 이제 이 일에 충실하려구요. 이제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지도자 수업을 밟아야지요.
(은퇴하는 세 거물들과의 인터뷰는 유쾌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시종 유머러스하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때문에 인터뷰에서 기자가 할 역할은 거의 없었다. 너무나 솔직담백하게 대화를 주고 받아 기사에 차마 쓰지 못할 얘기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위트 속에는 어딘가 모르는 허전함이 있었다. 셋 다 이날 유독 담배를 많이 피웠다. 스포츠조선 편집국이 있는 4층 발코니에 마련된 흡연공간으로 자주 들락날락했다. 담배연기를 내뿜는 그들의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