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 본명 김봉남. 떠올려 보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의 이면엔 국민들에게 환한 웃음을 준 인물이었다. “앙드뤠~김이에요.” “퐌~타스틱~.” “제 발음은 억스풔~드 식이에요.”(앙드레 김의 발음 표현) 세계적인 명성에 힘입는 이른바 ‘하이클래스’ 신분이라고 해서 사람들 앞에서 우쭐대거나 거만하지 않았다. 개그맨들이 자신의 모습을 흉내 낼 때면 “너무 발음을 꼬는 것 같다”면서도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재미있다”고 따뜻하게 웃어 줬다.
전화위복
화려한 삶을 살면서 유명 연예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다른 세상의 사람’ 정도였다. 한결같이 하얀색의 턱시도를 입고 대중 앞에 모습을 비추는 앙드레 김의 모습이 약간은 꼴불견 같기도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앙드레 김은 1999년 8월 24일 이른바 ‘옷 로비’와 관련한 국회 청문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또 다른 매력을 바라보게 한 계기를 맞았다. 앙드레 김이 참고인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 씨가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 씨에게 고가의 의류브랜드 ‘앙드레 김 부띠끄’를 선물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증인선서에서 “앙드레 김입니다”고 소개하자 국회 법사위원장은 “본명을 말해 달라”고 했고, 이에 앙드레 김은 “김봉남 입니다”고 또박또박 자신의 본명을 밝혔다. 평상시 각인되어오던 그의 세련된 이미지와는 괴리감 있는 본명에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때 아닌 수모를 견디면서도 진지하게 답변에 응했고, 청문회장을 나서기 직전까지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인 앙드레 김에게 사람들은 곧 ‘애정’과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후 사람들은 TV에 등장하는 앙드레 김을 이웃집 아저씨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선 앙드레 김을 패러디한 아이템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본명이 밝혀지면서 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진실하고 정직하면 좋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아무리 억울해도, 오해를 살 만한 일이 있어도 진실한 마음으로 잘 견뎌내면 전화위복이 되고 좋은 결과가 뒤따른 다는 것을.” (대구 매일경제 ‘앙드레 김’ 인터뷰 중)
그는 평소 과거의 ‘옷 로비’ 사건을 떠올리며 “그 땐 정말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날 제대로 알아주지 않을까”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 이었다”며 “자신의 위치를 내세우기 보다는 주변을 먼저 아끼는 모습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 분의 환한 미소에 마음이 즐거웠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2일 오후 7시 40분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폐렴과 대장암이 악화돼 사망한 고인을 향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개 숙여 애도하고 있다. 16일 오전 6시 발인을 마친 고인의 유해는 30년간 살았던 자택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의상실, 기흥의 ‘앙드레 김 아뜰리에’ 공장을 방문한 뒤 부모의 유해가 안치된 충남 천안의 천안공원묘원에 묻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