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한강을 중심으로 한 한(韓)부족이 만주지역의 예(濊)부족·맥(貊)부족과 연합해서 세운 국가로 '한'부족은 대대로 고조선의 제왕을 배출하면서 국가 형성을 주도했다.'
원로 사회학자 신용하(73·사진) 한양대 석좌교수가 최근 고조선(古朝鮮)의 기원을 다룬 연구서 '고조선 국가 형성의 사회사'(지식산업사)를 펴냈다. 독립협회, 신채호·박은식의 사회사상 등 민족운동사와 독도 영유권 연구에 앞장섰던 신 교수가 2002년 서울대를 정년 퇴임한 후 전념해 온 고조선 연구의 첫 결실이다. 사회학자가 왜 고조선 연구서를 냈을까. 신 교수는 "민족 분단의 원인을 사회학을 통해 밝히려다 보니 민족운동사를 공부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 과정에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신용하 교수는 "한부족이 곰을 숭배하는 맥부족과 혼인동맹을 맺고, 예부족을 후국(侯國)족으로 포용함으로써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그간 학계에서는 고조선의 주도 세력을 '예맥' 1부족설(이병도), '예'부족과 '맥'부족의 2부족설(김상기) 등으로 제시해왔다. 신 교수는 여기에 '한'부족을 추가했을 뿐 아니라 고조선 건국에 가장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부족으로 자리매김했다.
신 교수는 한강 유역에서 기원해 농경생활을 가장 먼저 시작한 부족을 '한'부족으로 파악한다. '한'은 매우 오래된 한부족 언어로 '큰'이란 뜻이며, 중국 고문헌은 이를 '韓' '寒' '桓' '汗' 등으로 음역(音譯)하여 표기했다. 신 교수는 "한강 유역에서는 BC 1만년쯤부터 단립(短粒)벼를 선택해서 전기 신석기시대(BC 1만년~BC 6000년)에 이미 농경생활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농경생활의 도구인 '뾰족밑 빗살무늬토기'도 '한'부족이 발명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뾰족밑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곳은 남쪽으론 남해안과 낙동강 유역에서 북으로는 청천강까지, 동으로는 강원도 양양 오산리까지 퍼져 있는데, 그 중앙 지점이 한강 유역이다. 신 교수는 한강에서 발굴된 '뾰족밑 빗살무늬토기'는 늦게 잡아도 BC 6500년~BC 5000년경에 사용됐다며 BC 5000년으로 추정하는 기존 학계보다 1500년 정도 올려 잡는다. 신 교수는 '한'부족은 태양을 숭배했고, 천손(天孫) 의식을 가졌으며, 남성 군장(君長)의 지휘를 받는 부계(父系) 부족공동체 사회였으며, 왕을 '한' '가한'이라고 부르는 기원을 만든 부족이었다고 설명한다.
신용하 교수의 '한부족 고조선 주도설'은 고고학 발굴 성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신 교수가 '한'부족 농경문화 기원의 근거로 제시한 충북 청원 소로리 볍씨는 고고학계에서도 연대(年代)와 발굴 의미를 둘러싸고 견해가 충돌한다. 신 교수는 "고조선 연구는 기자조선을 내세운 중국의 전근대사학과 '단군조선'을 신화로 취급한 일제 어용사학자들에 의해 너무 훼손돼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면서 "패러다임 변환에는 사회학적 상상력과 객관적 과학주의적 접근이 유용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