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박창선 김희태 신현호 유동춘 홍성호 등 세계대학선수권 우승
[OSEN=우충원 기자] 한국 축구의 'U-17 소녀시대'가 세계 정상에 올랐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서 남자를 제치고 먼저 우승을 달성한 여자 축구는 한국 축구의 발전 가능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
그러나 '소녀시대' 이전 이미 세계 정상에 오른 경험이 있다. 34년 전 이미 남미에서 열렸던 대회서 우승을 차지했던 것. FIFA 주관 대회는 아니지만 조광래 현 대표팀 감독이 연세대 시절 출전했던 1976년 제5회 세계대학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주관하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축구만 따로 떼어 주최하던 이벤트로서 1978년 제6회 이란 대회를 끝으로 유니버시아드대회에 흡수됐다.
1976년 8월 1일부터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등지에서 열렸던 이 대회서 한국은 파라과이와 결승전에서 몰수패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 예선 탈락으로 같은 해 열렸던 몬트리올 올림픽에 나가지 못해 우울했던 한국 축구계에 하나의 활력소가 됐던 것.
비동맹국가간의 적극적인 스포츠 교류를 추진했던 대한체육회의 방침에 따라 당시 처음 출전한 한국은 16개 참가국 중 일본, 이란과 함께 출전한 아시아 3개국 중 하나였고 개최국인 우루과이를 비롯해 중남미에서 6개국,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7개국이 참가했다.
대회 출전 자격은 아마추어 대학생 및 1년 전 졸업자로 국한되면서 월드컵 예선 및 본선에 출전한 선수도 나갈 수 없었지만 올림픽 출전자는 참가가 가능했던 이 대회에 남미서는 프로와 계약한 선수들도 출전해 대회 수준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종하 단장은 귀국 후 김포공항서 가진 인터뷰서 "남미의 대학축구는 예상과 달리 강했다. 남미에서는 20세 이하 선수들은 프로 입단 자격이 없어 계약만 맺은 뒤 대학에서 활약하다 프로로 가기 때문에 파라과이는 6명, 칠레에는 8명의 프로 입단 예정자가 끼어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 대학선발팀은 조광래를 비롯 박창선 김희태 김황호 홍성호 신현호 유동춘 김성남 한문배 김홍주 황정연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출전했다.
한국은 브라질, 프랑스, 칠레와 3조에 속해 첫 경기인 프랑스와 경기서는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승승장구한 대표팀은 브라질에 2-1, 칠레에 4-0의 대승을 거뒀다. 또 세네갈과 가진 준준결승서는 연장 접전 끝에 3-3 무승부를 기록한 후 승부차기서 5-4의 승리를 챙겼다.
준결승서 만난 네덜란드와 경기서는 2-1로 승리했다. 1976년 8월14일 대망의 결승전서 만난 상대는 파라과이. 전반서 유동춘의 선제골로 앞서가던 한국은 파라과이의 반격에 실점하며 전반을 1-1로 마쳤다. 그러나 한국은 후반 18분경 파라과이의 수비수가 조광래에 고의적인 반칙을 가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그러나 이때 파라과이 선수들이 주심의 판정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연달아 선수 2명에게 레드카드를 꺼내면서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페널티킥을 성공하며 2-1로 앞선 한국을 상대로 파라과이는 9명의 선수로 경기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권하며 한국이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당시 맹활약한 조광래 신현호 홍성호는 스페인과 우루과이 프로팀으로부터 구체적인 입단 제의까지 받았고 한국 축구선수가 유럽이나 남미 구단에서 먼저 영입 제의를 받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학생들끼리의 축구대회였지만 한국축구가 세계 규모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당시가 처음. 이후 한국 대학선발팀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등 남미 4개국을 순방하며 친선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우승컵을 들고 한국에 돌아온 대학선발팀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조성옥 문교부차관를 비롯해 체육계 인사들이 영접을 나왔다. 이어 김포공항 광장에서 환영식을 시작으로 9대의 오픈카에 나눠타고 제2한강교(지금의 양화대교)와 신촌을 거쳐 시청앞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 페널티킥을 얻어낸 주인공인 조광래 감독은 "파라과이 선수들이 굉장히 거친 플레이를 펼쳤다. 세계 무대서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크게 안했지만 열심히 노력했다"면서 "파라과이 선수가 계속 파울을 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페널티킥을 얻었다. 거친 항의를 하면서 결국 파라과이는 선수들이 퇴장당해 경기를 포기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조 감독은 "좋은 선수들이 많이 참가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대표 2진 격인 충무 출신들이 출전해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이 대회 직전인 7월 31일 몬트리올 올림픽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건국 이후 첫 금메달을 따면서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됐지만 기록에 나와 있는 것처럼 김포공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할 정도로 큰 영광으로 기억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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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선발팀이 개선한 모습을 보도한 1976년 9월 4일자 동아일보 체육면. 기사 내 사진 중 맨앞에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람이 조광래 현 대표팀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