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티토(John Titor) 지도'라 불리는 괴(怪)지도가 나타난 것은 지난 10월 7일이다. 2036년의 동아시아 지형을 그렸다는 이 지도는 연해주~만주~광동성을 잇는 광활한 지역을 한국 영토로 묘사하고 있다. 지도에 따르면 2036년 일본은 한국의 식민지(Colony of Corea)가 돼 있으며, 중국 영토는 지금의 5분의 1 정도로 축소됐고, 몽골(내몽골 포함)·위구르·토번(Toburn·티베트의 옛 이름)은 모두 별도의 영토를 가진 독립국으로 성장했다.

인터넷에 등장한 이 지도는 나오자마자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다. 네이버·네이트·다음 등 국내의 주요 포털사이트와 각종 블로그, 카페, SNS(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유포되면서 수백 건 이상의 기사·댓글이 폭주했다. 일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향신문은 자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지도를 올리며 주요 기사로 이를 다뤘고, 매일경제·서울신문·한국경제 등 다른 일부 일간지들도 잇달아 지도 관련 기사를 화제로 올렸다.

네티즌들은 대부분 "지도처럼 됐으면 좋겠다" "어쨌든 기분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좋긴 한데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칠까봐 걱정"이란 글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이 지도를 놓고 일부에서 '비현실적'이라 꼬집자 "당신 한국 사람 맞냐"며 화를 내는 네티즌도 있었다.

등장한 지 이틀 만에 인터넷 ‘도배’

존 티토가 그렸다는 2036년 지도(왼쪽). 이 지도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급증하자 한 네티즌은 자신이 이 지도를 그렸다며 참고자료로 삼았다는 지도(오른쪽)를 공개했다.

이른바 '존 티토 지도'라 불리며 국내 인터넷을 후끈 달군 이 지도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지도에 그려진 내용은 대체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10월 6일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던 이 지도는 10월 7~8일 이틀 만에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언제, 누가, 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밝힌 매체는 없었다. 네티즌들은 이 지도에 대해 '존 티토라는 사람이 그렸다는 지도'라고 주장했다. 온·오프라인 매체들은 일제히 관련 기사를 내보냈지만 '존 티토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지도' 또는 '존 티토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지도'라고만 소개했을 뿐, 존 티토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린 지도인지에 대한 설명을 달진 않았다.

존 티토는 수년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2000년 11월 2일, 우리의 '천리안'과 같은 미국 전자게시판(Art Bell BBS Forums)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자신이 2036년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스스로에 대해 1998년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현직 미국 군인이라고 밝힌 그는 "군부의 지시를 받고 '유닉스 버그(Unix bug)'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왔다"고 주장했다. 유닉스 버그란 2036년 세계가 봉착하게 되는 컴퓨터 대란이며, 지난 2000년 발생했던 '밀레니엄 버그'와 유사하지만 훨씬 강력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직접 글을 올렸다는 전자게시판은 현재 폐쇄되고 없지만, 당시 그가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나눴다는 대화는 그의 팬 사이트 '존 티토 타임스(John Titor Times)'에 고스란히 올라 있다.

존 티토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0년 이후의 세상에 대해 언급한 '예언' 때문이다. 그는 2000년 11월 2일부터 2001년 3월 24일까지 4개월20일간 "자신의 부모 집에 머물며, 부모의 컴퓨터로 네티즌들과 대화한다"며 2000~2036년 사이에 벌어질 사건들에 대한 예언 아닌 예언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이라크전 발생, 광우병 파동, 동남아 쓰나미 사태, 중국의 유인 우주선 발사 등을 예언해 적중시켰다.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미국 대선 이후 미국이 내전에 돌입한다"든가 "2004년 이후 올림픽이 중단된다"는 등의 예언은 맞지 않았다.

존 티토가 타오 왔다고 주장하는 타임머신 내부.

존 티토는 “2015년 세계적 핵전쟁이 발발, 3차대전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충격적인 이 예언의 적중 여부를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그가 그렸다는 이른바 ‘존 티토 지도’가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2036년의 동아시아 정세를 그렸다는 이 지도엔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강대국으로 묘사돼 있다. 하지만 이 지도의 모습은 그가 남긴 ‘예언’과 상충된다. 존 티토는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서방이 어수선한 틈을 타 중국의 패권주의가 강화된다”며 “이후 중국이 대만, 일본, 한국을 강제 합병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2036년 세계지도를 올리진 않았다. 그랬던 그가 유독 2036년의 동아시아 정세에 관심을 갖고 지도로 그렸으며, 글쓰기를 멈춘 지 10년 만인 2010년 10월 7일 갑자기 이 지도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도 아닌 대한민국 인터넷에 나타난 이 지도가 이틀 만에 사이버 세계를 도배해 버렸다.

동영상 포털 SSTV가 첫 보도

우선적으로 제기되는 의문은 존 티토란 사람이 정말 실존했던 인물일까 하는 점이다. 지금으로선 존 티토라는 인물의 실재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는 2001년 3월 24일 "예정된 임무를 완수했다"는 글을 올린 뒤 종적을 감췄다. 이후 그를 봤다는 사람이나, 그와 대화를 나눴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부모님 집에서 부모님의 컴퓨터로 글을 올린다"고 주장했지만, 존 티토가 거주했다는 부모님의 집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존 티토의 부모도 발견되지 않았다. 존 티토 팬 사이트에도 그의 존재를 입증할 만한 사진이나 동영상은 남아있지 않다.

존 티토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부터 왔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타고 왔다는 타임머신 내부 사진과 기계장비 개념도를 공개했다. 이 사진과 개념도는 현재 여러나라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진만 보고 타임머신의 진위여부를 따지긴 힘들다"는 입장을 취했다. 인하대 기계공학부 조진연 교수는 "타임머신은 물리법칙을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계 설계도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관련 사진을 본 뒤 "인터넷에 올라있는 단순한 기계 장비 개념도만으로는 그것이 실제 작동하는 것인지 아닌지, 작동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2036년의 타임머신엔 3명이 탈 수 있다"는 존 티토 주장에 대해서도 이견을 표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이형목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시간 이동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하지만 (무생물이 아닌) 사람이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존 티토 지도' 기사가 처음 뜬 시각은 10월 7일 17시9분이었다. 기사를 올린 매체는 SSTV라는 인터넷 동영상 포털이다. 기사를 작성한 SSTV 기자는 "인터넷 포털의 개인 블로그 등에서 지도를 본 뒤 주시해 왔다"며 "그러던 중 7일 갑자기 검색어에 뜨기에 바로 기사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포털 누구의 블로그에서 이 지도를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자신의) 기사가 처음인지 아닌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SSTV 기자의 말처럼 이 지도는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한동안 떠돌아다니던 것이다. 지난 1월 KBS 예능프로그램인 '스펀지 2.0'은 세계의 미스터리 예언가에 관한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이 지도를 '존 티토의 지도'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스펀지 2.0은 이 지도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존 티토 지도와 관련된 기사가 갑자기 쏟아져 나왔던 지난 10월 7~8일, 수많은 매체들이 관련 기사를 내보냈지만 출처를 명확하게 밝힌 곳은 없었다. 단순히 '사진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라고만 표기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언론보다 먼저 의문을 제기한 것은 네티즌들이었다. 이들은 지도에 나타난 '토번(Toburn)'이란 표기에 주목했다. "토번은 고대 티베트 왕조의 중국식 표기인 '투판(吐蕃)'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란 지적이다. 한 네티즌은 "2036년 미래의 아시아 대륙에 존재하는 국가 이름이 한국식 발음으로 표기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고 주장했다. 다른 네티즌은 "지도엔 우리나라도 'Corea'라고 표기돼 있는데, 2036년에 제아무리 토번이란 국가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외국식 표기는 '티베트(Tibet)'로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네티즌들은 이 지도가 오직 국내 사이트에서만 발견된다는 점에도 의문을 표했다. 이들은 "만약 존 티토가 이 지도를 만들었다면 그의 추종자들이 몰려있는 미국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발견돼야 마땅하다"며 "그러나 존 티토 팬들이 운영하는 '존 티토 타임스'나 다른 사이트 어디에서도 지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떠돌던 지도를 포토샵으로 수정했다"

그런데 이 지도와 관련된 기사 댓글 중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다. 'ksjj****'라는 아이디를 가진 네티즌이 일간지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ksjj****'는 존 티토 지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2004년 한단고기(환단고기)에 빠져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지도를 포토샵으로 수정해서 만든 겁니다.;;; 당시 제 생각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영역과 대륙 백제 영역을 합쳐서 만들어 본 것입니다."

'ksjj****'는 "당시 '웃대(인터넷사이트 웃긴대학)'에 지도를 작성해 올렸는데, 워낙 오래전 일이라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다"며 "지도를 그릴 때 참고로 삼았다"는 자료를 함께 공개했다. 이 자료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영토는 '존 티토 지도'에 표기된 한국 영토와 유사하다.

'ksjj****'가 지도를 만들었다는 2004년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국내 반중감정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이로 인해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부 '열혈 한국인'들은 고조선이나 고구려 영토를 그린 지도를 한국 지도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다른 일부는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과 일본의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인들의 망상'이라며 혐한 감정을 부추기기도 했다.

오늘날 다시 나타난 이른바 '존 티토 지도'는 일부 네티즌이 올려놓은 고구려 또는 고조선 지도를 수정한 '가짜 지도'를 존 티토라는 의문의 인물과 결합시켜 만든 창작품으로 보인다. 문제는 10월 7일 첫 기사가 나온 지 이틀 만에 인터넷이 온통 관련 기사로 범벅됐다는 점이다. '존 티토 지도'로 인한 피해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잘못된 정보의 확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랐다는 점에서,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사실과 상상을 구별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개인이 원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온라인 문화 속에서, 인터넷 매체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정보를 생산해내려는 욕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 불안과 개인의 피해의식을 조장하는 '묻지마'식 이슈 생산은 그만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의 황당 예언가들]

미국 실비아 브라운

"2008년 이후 선출된 대통령이 집무 중 심장마비로 사망할 것."
"2020년에는 대홍수가 발생하고, 2026년에 해일이 일본을 강타할 것."
"2013년이나 2014년이면 근위축성과 루게릭병이 퇴치된다."

1974년부터 예언을 한 그녀는 "프랜신이라는 영혼이 (자신에게) 미래의 일을 알려준다"고 주장했다. '래리킹 라이브' 등 유명 프로그램의 단골손님인 그녀는 20~30분 동안 전화 상담을 해주는 대가로 850달러를 받는다. 브라운은 1992년 금융사기 혐의로 기소돼 20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케냐 데이비드 오워 목사

"2010년 7~8월 중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

오워는 이스라엘과 독일에서 공부한 뒤 분자유전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 지난 6월 25일~7월 6일 한국에서 집회를 하고 돌아갔는데 집회 도중 '한국에 전쟁이 날 것'이란 예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그의 말을 일부 신도들이 확대해석하면서 빚어진 오해로 드러났다. 그는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것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 시기를 적시하진 않았다"며 '7~8월 한국전쟁설'을 부인했다.

불가리아 바바 반가

"거대한 강철 새가 미국을 공격한다."(9·11테러 암시)
"2010년 안에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다."

1911년에 태어나 1996년 8월 세상을 떠난 예언가. 2차 세계대전, 9·11테러, 소련연방 붕괴, 다이애나비의 죽음, 쿠르스크 핵잠수함 참사 등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브라질 주세리노

"2015년 유럽 대륙에 대가뭄 일어날 것."
"2043년에는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의 여파로 인류의 80%가 죽음을 맞이할 것."

브라질의 영어교사 주세리노는 1989년 10월 26일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비행기가 충돌, 빌딩을 무너뜨리고 1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란 편지를 보내 9·11을 예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이라크 전쟁,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2004년 동남아 쓰나미 등도 예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38년엔 아프리카의 기온이 58도까지 올라갈 것이며, 2040년엔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소실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 주간조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