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그는 "김성근 감독님은 시련과 영광을 동시에 안겨준 분"이라고 했다. 2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엄지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재현. 인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더 이상 그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

SK의 '영원한 캡틴' 김재현. 1994년 LG에서 데뷔, 17년 동안 폭발적인 팬의 사랑을 받았다. 통산 타율 2할9푼4리, 201홈런, 939타점, 115도루. 2002년 고관절 수술로 선수생명의 엄청난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의 야구 인생은 그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너무나 아쉽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고 기자회견을 할 때도 그의 은퇴를 만류하는 목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기량은 여전히 훌륭하다. SK 김성근 감독 역시 "앞으로 4년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선수"라고 아쉬움을 표할 정도였다.

그래서 스포츠조선이 올 시즌 마지막 10대1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마지막 떠나는 길, 24일 인천문학구장에서 만난 그는 공식석상에서 할 수 없는 얘기를 가감없이 털어놨다.

-지금도 육체적, 기술적으로 최절정이신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은퇴하시는거죠(한화 김태완, KIA 나지완)

▶(이런 질문을 너무 많이 들었는지 웃는다.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달라고 채근하자 어렵게 말을 꺼낸다) 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힘이 있을 때, 좋을 때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다. 물론 야구를 오래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선배님들이 은퇴할 때 너무 좋지 않게 퇴장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남들이 아쉽다고 할 때 은퇴하는 게 사실 꿈이었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룰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 또 하나는 후배들 길을 터주려고 그러는 부분도 있다. 사실 어제 (정)근우하고 (박)정권이 식구들이랑 밥을 먹었는데, 그때도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 얘기하더라. 나도 아쉽다. 사실 지금 재계약을 해서 2~3년 정도 한다는 가정하에 10억원 정도는 손실을 보는 건데. 그래도 우리 팀에 너무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많다. 내가 있으면 그 선수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놓쳐버릴 수 있잖아. 은퇴를 결심한 또 다른 이유인 것 같아.

-고 3때 원래 대학(연세대)에 진학할 의향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갑작스럽게 프로로 전향해 LG에 입단했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냐(KIA 김지훈 코치·김재현의 신일고 2년 선배)

▶신일고 시절 대표팀에 뽑혀 일본에서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하고 LG 스카우트가 함께 구장에 찾아왔어요. 그래서 '아 팀이 나를 원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당시 고졸출신으로 프로에서 타자로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사실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프로 경기 더블헤더를 보러 갔었는데, 박종호 선배가 4타수3안타에 좌우타석 홈런을 쳤어요. 속으로 "저 형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얻었죠. 연세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가고 싶었던 대학이었는데, LG의 적극적인 구애도 있었고, 이왕 프로에서 생활할 바에는 일찍 하는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포수보던 시절 투수 김주철이 보복차원의 빈볼을 던졌는데, 화를 참지 못한 채 내가 앉아 있으니까 마운드로 갔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어?

▶지훈이 형은 선배고, 맞춘 선수는 후배니까. 마운드로 갔죠. 근데 빈볼이라는 건 선수들끼리는 뻔히 알아요. 화가 많이 나요. 빈볼 이라는 것 자체는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동료의식도 있는거고. 앞으로 우리 후배들은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으면 해요.

-신일중 1학년짜리가 배트 스피드도 엄청 빠르고 펀치력도 있었어. 타고난 배팅스피드를 프로생활 내내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어?

▶제가 지구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에요. 순발력은 좀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려서부터 강한 스윙 200개를 집중해서 한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런 운동을 열심히 한 편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 같고. (쑥스럽게 웃는다. "왜 웃냐"고 기자가 묻자, "내 칭찬을 스스로 하려니 창피하다"고 한다)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을 때 그 느낌이 어떠셨나요.(넥센 강정호)

▶대타였는데. 타석에 들어서면서 '한국 야구인생의 마지막 타석이구나'라고 저절로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고, 정말 좋은 모습으로 끝내고 싶었다. 사실 한국시리즈 4차전 내내 매타석이 그랬어. .

-2002년 (고관절)수술 후 고난의 시기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 가장 힘이 되어줬던 사람 한 명을 꼽는다면 누가 있을까요. (넥센 김민우)

▶집사람이지. 당시 경희의료원에 수술하고 난 뒤 누워있는데, 정말 상태가 안 좋았다. 아프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기도 하고. 선수생활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때 부인이 병실에 풍선도 달고 마음을 밝게하려는 이벤트를 많이 해줬어. 정말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힘이 돼 주더라. 대화도 많이 하고. 정말 사랑의 힘인 것 같아. 그 해 수술하고 2003년 6월인지 7월인지 KIA전에 복귀전을 치렀어. 그때 선발투수가 김진우였는데, 당시에 구단에서 나를 믿지 않았거든. 한마디로 여기서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잘릴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 그 때 첫 타석 안타치고, 두번째 타석 3점홈런을 쳤어.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는데, 그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더라. 집에 가니까 와이프가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경기 보면서 울고, 전화하니까 울고 했는데 말이지.

(궁금한 게 갑자기 생각났다. 김재현은 와이프 김진희씨는 언론에 노출되는 걸 매우 꺼린다. 그래서 "왜 그렇게 와이프를 꽁꼼 감춰두냐. 사실 10대1 인터뷰를 부인과 함께 하고 싶었다"고 짖궂게 물었다. 그러자 김재현은 "가끔 사진이나 카메라에 얼굴이 노출되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나왔는데, 너무 창피해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그런 권유를 안해요"라고 싱긋이 웃는다)

-아내가 연예할 때 선배 팬이었습니다. 저에게 사인볼 하나 얻어달라고 했었는데. 이제 은퇴를 하시니 이후 행보가 궁금합니다. 만약 지도자를 하시게 된다면 어떤 야구를 하고 싶으신가요(롯데 조성환)

▶하하하(김재현이 호탕하게 웃는다) 사실 성환이 너 집사람이 팬이라고 결혼할 때 사인해 달라고 했잖아. 프로포즈할 때 썼다는데. 너는 정말 좋은 동생이야. 성격도 좋고, 모범이 되니까 롯데의 팀워크가 좋아지는 것 같아. 지도자 색깔이라. 만약에 한다면 믿음의 야구를 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도 정말 열심히 해야하고, 많이 시킬 것 같가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가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팀이 돼야 할 것 같아. 지금 우리 팀이 그런 것 같고. 올 시즌 야구를 하면서 팀동료들이 서로 마음을 모으더라고. 팀동료의 혼신을 다한 플레이에 감동받고, '이게 힘이구나. 이 힘은 다른 팀이 못 잡겠구나'라고 생각했어. 그런 팀을 만들고 싶다.

-선배 보면 신기한 게 하나 있습니다. 사실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면 항상 제 스윙을 하기가 힘들거든요. 근데 선배는 항상 제 스윙을 하시더라구요. 정말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은 스윙을 할 수 있는 지 비결을 가르쳐 주세요.(SK 박정권)

▶노하우는 없는 것 같다. 대타는 정말 컨디션 조절하기 힘들지. 내 자신이 당당하지 못하면 그라운드 안에서 내 스윙을 하지 못한다. 상대투수와의 기 싸움에도 영향을 받고. 항상 내 스윙을 완벽히 맞춰놓고 투수와의 밸런스 싸움에 들어가야 해. 그 싸움에 이기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 스탠스 폭을 늘리거나 좁히고, 방망이를 짧게 잡기도 하고. 예전 시즌이 기억난다. 그때 내가 방망이를 극단적으로 짧게 잡으니까 그 선수가 "왜 이렇게 짧게 잡냐. 민망하지 않냐"고 하더라고. 나는 그때 3할 정도 치고 있었고, 그 선수는 2할대를 치고 있었거든. 그래서 "방망이를 짧게 잡는 게 창피한 게 아니라 타율이 낮은 게 창피한 거다. 짧게 잡아도 어떻게든 출루를 해야 한다. 야구는 평균을 올리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한 적이 있어. 내 야구 이론이기도 하고.

-은퇴하는데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은퇴하는 것, 자신의 체력이나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은퇴하는 것. 하다가 하다가 막바지에 약간 비참하게 은퇴하는 게 있는데, 재현이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은퇴하는 것 같다. 너가 생각할때는 어때. (SK 김성근 감독)

▶정말 너무 행복합니다. 제가 그렸던 시나리오대로 다 된 것 같아요. 마지막에 우승도 하고, 헹가래도 하고. 꿈이 현실이 됐어요,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정말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그는 올 시즌 SK의 주장이었다. 주장은 감독과 선수들 사이를 잇는 가교다. 하지만 SK 감독이 누군가. 강성일변도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이다. 여기에 대해서 김재현은 이미 한국시리즈에서 "시즌 도중 휴가를 건의했다가 2게임 정도를 빠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징계성 조치'였다는 의미. 김재현은 이 얘기에 대해 "그때 휴가를 건의하고 난 다음 감독님이 화가 좀 나신 것 같아요. 얘기는 안 하시는데. 내가 대타에 들어갈 타이밍인데, 2게임 연속으로 부르시질 않더라구요. 그때 '아 나를 통해서 선수단에게 긴장을 불어넣으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했다. 그는 "감독님도 얘기하셨지만, 감독님이 전반기 끝나고 후반기에 들어가셨을 때 상당히 급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거든요. 벤치에서는 항상 포커 페이스셨는데, 표정도 드러나시고. 그때 한여름이었는데 선수들에게 야간훈련까지 지시하셨어요. 선수들도 모두 감독님이 시키시니까 의미없는 훈련을 하더라구요. 저도 불만이 많았죠. 저도 독이 상당히 많이 올라온 상황이었는데, 감독님이 하루는 팀 미팅에서 그런 얘기를 다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선수들 모아놓고 "다시 하자. 여기서 사분오열되면 그동안 했던 고생들이 모두 헛수고가 된다"라고 했죠. 그때 이후 팀워크가 더욱 강화됐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라구요"라고 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두 차례나 "김재현이 고관절 수술할 때 하체를 쓸 수 없으니까 상체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더라. 참 대단한 선수고 모범이 되는 선수라고 생각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 말을 하자"저 앞에서는 그런 얘기 한번도 안 하셨어요. 워낙 감정노출을 안하시는 분이니까. 참 시련도 주시고, 기쁨도 주신 분이에요"라고 했다. 그는 김감독과 애증의 관계였다. 그는 "감독님이 2007년 SK 부임하셨을 때 제가 팀내에서 타격의 리더였어요. 근데 포지션 경쟁때문에 자꾸 빼시더라구요. 특히 왼손 투수가 나올때는. 나중에 미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은퇴도 생각했는데, 집사람이 '이건 오빠 스타일이 아니다. 끝낼 때 끝내더라도 다 마치고 해라'고 했어요. 결국 끝까지 버텼는데, 한국시리즈 MVP가 되고. 상을 탈 때는 기뻤지만, 감독님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복잡하더라구요. 그때 감독님께서 시련을 많이 주셨는데. 어쩔 수 없어요. 자신의 실력으로 극복해내는 수밖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