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약물이 부족해 사형 집행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미국 애리조나주가 영국에서 약물을 수입해 26일 오후(이하 현지시각) 사형을 집행했다. 미국이 외국에서 사형용 약물을 수입해 사형을 집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7일 미국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애리조나주는 26일 오후(현지시각) 살인죄로 20년 넘게 복역해온 제프리 랜드리건(Landrigan·50)에게 약물을 주사하는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미국 일부 주(州)는 사형집행용 약물로 쓰이는 마취제 ‘티오펜탈(thiopental)’의 재고가 바닥나 올해 봄부터 사형 집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애리조나주도 랜드리건의 사형 집행을 앞두고 이 약물을 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다.

티오펜탈은 약물 주사로 사형을 집행하는 3단계 중 첫번째로 필요한 약물이다. 나머지 두 약물로 사망에 이르게 하기 전에 사형수를 무의식 상태로 만드는 마취제다.

이 약품은 미국의 호스피라사(社)에서 단독으로 공급하는데, 이 회사는 원료가 부족해 내년 초에나 공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호스피라사는 그동안 자사의 마취제가 사형 집행에 사용되는 것을 반대해왔기 때문에 과연 티오펜탈의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티오펜탈을 백방으로 찾던 애리조나주는 지난 26일 사형집행을 앞두고 약물을 확보했다. 그러자 랜드리건의 변호인이 애리조나주에 약물의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랜드리건의 변호인은 연방법원에 “애리조나주가 약물의 출처를 밝히지 못하는 것은 해당 약물이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일 수 있다”며 “이는 자칫 사형수에게 예상치 못한 고통을 줄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연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5일 랜드리건의 사형 집행을 잠정 중단시키고, 주 검찰에 약물의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애리조나주는 이튿날 해당 약물은 영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애리조나주 검찰총장 테리 고다드(Goddard)는 “수입처를 공개한 것은 이 약물이 ‘믿을만한 곳’에서 수입됐음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 내 어떤 기업에서 수입된 것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애리조나주의 발표 이후 연방법원은 잠정 중단했던 사형집행의 재개를 승인했다. 결국 이날 오전으로 예정됐던 랜드리건의 사형집행은 오후 10시26분에 이뤄졌다.

사형용 약물을 수출한 영국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은 1965년 사형제를 폐지했다. 사형제가 폐지된 국가에서 사형용 약물을 외국에 수출했다는 점에서 윤리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영국의 인권 변호사 클리브 스태포드 스미스(Smith)는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사람을 죽이는 일로 돈을 버는 회사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며 해당 약물을 수출한 영국 제약회사의 이름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애리조나주에서 처음으로 사형용 약물을 수입해 사형을 집행하면서, 티오펜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주에서도 이같은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