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으면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해요.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는 연어처럼 독일·이라크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결국 한국에 왔네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용산 미군기지 사무실에서 만난 미육군 한국근무단(KSC) 부단장 헨리 브라운(Henry Brown·33) 소령은 어린 시절 한국에 살 때 어머니와 찍은 사진을 꺼내 어루만졌다. 6·25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진 한국근무단은 수송·경계 근무를 하며 주한 미군을 지원하는 민간인 부대로, 한국인이 2000여명 근무한다. 브라운 소령은 유창한 한국어로 "어머니 친척도 6·25전쟁 때 한국근무단 일원으로 싸웠다고 들었어요. 제가 한국근무단 부단장으로 일하니 나 스스로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용산 미군기지 사무실 앞에서 미육군 한국근무단(KSC) 부단장 헨리 브라운 소령이 부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브라운 소령은 1977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한국인 어머니 조복선(60)씨와 주한 미2사단 부사관이었던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한국 이름은 조하늘이다. 어머니 성(姓)을 따랐다.

그가 세살 때 아버지는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외가(外家) 사람들은 흑인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를 피했다. 어머니는 식당·옷가게에서 일하며 아들을 키우다 1984년 미 공군 부사관과 재혼했다. 의붓아버지를 따라 의정부, 평택 송탄, 대구 등으로 이사하며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녔던 브라운 소령은 동네 아이들에게 '깜둥이'라는 놀림을 받고 자주 싸웠다. 12살 때인 1989년 의붓아버지가 어머니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그도 데려갔다. 미국에 가서도 생김새 때문에 놀림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등학교 입학하던 날에도 '차이나 보이'라고 놀리는 친구들과 주먹다짐을 했다"고 했다.

그는 21살 때 친아버지를 만난 일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가 "어른이 됐으니 한번 만나봐"라고 말하며 이름과 사회보장번호를 가르쳐줬다. "공항에 마중나온 아버지를 꼭 안고 한참 울었죠. 반가우면서도 슬펐어요. 떠난 이유를 아버지께 묻지는 않았어요. 어린 아들과 아내를 두고 떠난 것은 무책임했다고 생각해요."

뉴멕시코 사관학교와 뉴멕시코주립대를 졸업한 그는 2001년 6월 미 육군 중위로 임관했다. 그는 자신과 어머니가 태어난 나라의 말과 역사·문화를 배우고 싶어 한국을 첫 근무지로 선택했다. 2001년 12월 한국에 왔지만 그는 2002년 6월 '미선·효순양 사망 사건' 때 번졌던 반미 집회·시위를 보고선 이듬해 3월 미국으로 떠났다. "어느 날 오후 10시쯤 지하철을 탔는데 술 취한 한국인 남자가 '미국으로 돌아가라'며 제게 욕하고 침을 뱉더라고요. 한국에 다시 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안 좋았어요. 연장 근무를 신청하지 않고 미국으로 갔죠."

2008년 제대를 고민하던 그에게 미군은 "제대를 미루면 현금 3만5000달러, 대학원, 원하는 근무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 친척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데 네가 한국에 있으면 좋겠구나. 너를 보러 한국에 갈 수도 있고…"라고 말했고 그는 바로 한국행을 선택했다.

한국에 와서는 미8군 민사처에서 일하며 '좋은 이웃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미군부대 인근 학교의 한국 학생들을 미군기지로 초대해 영어를 가르쳐주거나 미군들의 봉사활동 같은 대외활동을 기획·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는 지난 23일에는 선물을 들고 서울 성동구의 한 아동복지시설에 찾아갔다. "송탄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 때 미군부대 성탄절 행사에서 산타할아버지가 제게 선물 줬던 기억이 났어요. 기뻐하는 아이들 보며 그때 생각이 나 눈물을 보였지요."

그는 한국인 친구도 많다. 지난해엔 지인 소개로 인기드라마 '아이리스'에 해군 장교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이병헌·김태희씨 같은 유명 배우와 같이 촬영하니 꿈만 같았다"고 했다.

브라운 소령은 한국에선 군인에 대한 존경심이 미국보다 크게 낮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공항 같은 곳에서 군인들이 지나가면 시민들이 손뼉을 치고 군복을 입고 민간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감사하다'며 밥값을 내주는 분들도 있어요. 한국도 이런 분위기가 된다면 서로 입대하려고 하지 않을까요?"